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신종 코로나) 발원지인 중국 우한 교민들을 데려오는 계획에 차질이 빚어져 교민 사회가 큰 혼란에 빠졌다. 교민들은 전세기에 탑승하기로 돼 있던 30일 0시20분쯤 ‘집결시간을 재공지할테니 대기하기 바람’ 이라는 문자를 받고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교민이 격리 수용되는 충남 아산과 충북 진천 주민들의 격렬한 반대 소식을 접한 이들은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지만 바이러스 보균자 취급받는 것 같아 서운하다” “흑사병 수준의 공포로 여기는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교민들은 30일 우한 총영사관으로부터 수차례에 걸쳐 귀국 관련 공지를 받았다. 당초 정부는 이날 오전 중 교민들을 실어 올 전세기 2대를 인천공항에서 급파하기로 했지만 자정이 넘은 새벽에 갑작스럽게 “일정을 재공지하겠다”고 알렸다. 영사관 측은 낮 12시가 다 되어서야 “항공편이 아직 확정되지 않아 변동 가능성이 있지만 30일 탑승객들은 오후 9시까지 공항에 모여달라”고 했고, 오후에야 임시 항공편이 배정됐다고 알렸다. 31일 탑승하기로 돼 있던 교민들은 추가 전세기가 언제 오는지 알 수 없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에 짐을 정리하고 남은 식료품 등을 지인들에게 건넨 교민들은 더 큰 혼란에 빠졌다. 현지 대중교통이 마비돼 공항으로 가는 차편을 어렵사리 예약했다가 취소한 사람도 적지 않다고 한다. 교민들이 모여 있는 단체 대화방에서는 “당장 먹을 음식도 없는데 갑자기 비행 일정을 변경하면 어떡하냐” “이러다 귀국 못하는 것 아니냐”는 항의글이 쉴 새 없이 올라왔다.
특히 교민들은 영사관 측이 귀국 전세기편 일정을 수시로 바꾸면서도 구체적인 설명은 하지 않고 “불확실하다”는 말만 반복한 데 대해 불만이 컸다. 10여년간 우한에 거주한 권모씨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비행기를 탈 수 있는지 없는지 장담할 수 없으니 하루종일 영사관 공지만 쳐다보고 있다”고 말했다.
우한대에 유학 중인 박모씨도 “사나흘 전부터 귀국 신청을 받았는데 일정이 자꾸 늘어지고 변동돼 불안한 마음이 크다”며 “한국 정부가 중국 정부와 제대로 소통이 안 된 상태에서 발표부터 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보다 앞서 우한 거주 자국민들을 전세기로 이동시킨 미국과 일본 정부 대응에 비하면 아쉬운 점이 많다는 것이다. 31일 귀국 예정이던 A씨는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르겠고 너무 지친다”고 토로했다.
우한 교민들은 김포공항으로 입국하는 즉시 발열 등 검사 과정을 거쳐 충남 아산 경찰인재개발원과 충북 진천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에서 14일간 격리 수용된다. 이들 지역 주민들은 문재인 대통령의 당부와 지방정부의 수용 의사 발표에도 불구하고 격렬하게 항의했다.
우한 교민들도 이런 국내 분위기를 잘 알고 있었다. 박씨는 “같은 국민인데 마치 우리 모두가 바이러스 보균자인 것처럼 취급해 서운한 마음이 든다”며 “이렇게 욕먹으면서까지 한국에 가고 싶지는 않다”고 말했다. 우한 교민들을 대하는 거북한 시선 탓에 가족과 지인이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우려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들은 보건당국의 검역과 활동 제한 지침에 적극 협조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다른 유학생 B씨는 “나는 열이나 기침 등 아무런 증상이 없지만 우한에서 생활했고 신종 코로나가 전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으니 당연히 감수해야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중국 당국이 지난 23일 신종 코로나 확산을 막기 위해 우한을 봉쇄한 이후 시내는 황량하다고 교민들은 전했다. 대부분 시민들이 외출을 않고 바깥에 나갈 때는 꼭 마스크를 끼고 다닌다고 했다. B씨는 “신종 코로나가 번진 이후 감염이 무서워서 바깥에 거의 나가지 못했다”며 “도시가 봉쇄된 이후 다들 심각성을 크게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방극렬 조민아 기자 extre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