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단체 국제앰네스티가 한국의 인권상황이 헌법재판소 결정에만 달려있는 구조라고 비판했다. 일부 진전이 있었지만 이 과정에서 대의기관인 국회나 정부의 역할이 없다시피 했다는 지적이다.
국제앰네스티는 30일 서울 종로구 서울글로벌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2019년 아시아 태평양 인권 현황-연례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에는 한국 뿐 아니라 북한, 중국과 인도 등 아시아태평양 지역 전역 인권상황을 분석한 내용이 담겼다.
보고서는 한국의 중요 인권문제가 모두 헌재 결정에만 좌지우지된다고 분석했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불인정이 인권침해라는 취지의 2018년 판결, 지난해 낙태죄 위헌 판결이 그 사례다. 사형제와 군형법 상 동성애 행위 처벌 조항도 헌재 판단을 기다리는 중이다. 국제앰네스티는 한국 정부가 판결 뒤에도 여론의 반발을 이유로 제대로 된 후속조치를 내놓지 않았다고 봤다. 이정은 한국지부 사무처장은 “헌재 판결만으로는 실질적으로 인권을 진전시킬 수 없다”면서 “정부와 국회가 정치적 리더십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이 국제사회와 비핵화 협상을 벌이고 있지만 인권은 협상테이블에서 배제된 점도 지적받았다. 북한이 여전히 이동의 자유를 엄격하게 제한해 탈북인 강제송환, 납치 피해자 강제실종이 벌어지고 있다는 비판이다. 아놀드 팡 동아시아 조사관은 “북한에서의 인권 실현이 비핵화 필요성에 뒤처져서는 안된다”면서 “한국을 포함한 국제사회가 북한을 인권 대화로 끌어들이는 데 더욱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놀드 팡 조사관은 “북한 정부는 1969년 항공기 납치 이후 한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황원씨를 포함해 납치된 외국인의 명확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 정부 또한 강제 실종 문제를 해결해야 할 책임이 있다. 한국 정부는 북한과의 협상에서 납북자 문제 해결을 위한 적극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의 인권 탄압에 맞서 거리로 나선 시민들의 모습은 긍정적인 사례로 선정됐다. 홍콩의 범죄인 인도법안이 시민들의 저항 끝에 철회된 일과 스리랑카의 사형 집행 재개 저지, 몰디브에서 사상 최초로 대법원 판사에 여성 2명이 임명된 일도 꼽혔다. 니콜라스 베클란 동아시아 및 동남아시아 지역 사무소장은 “아시아에서 2019년은 탄압으로 가득한 해였으나 저항의 해이기도 했다”며 “정부가 기본적인 자유를 송두리째 박탈하려 했지만 사람들은 굴하지 않고 강력히 맞섰다”고 말했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