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중동평화안과 아랍세계의 분화…이스라엘 손잡는 사우디?

입력 2020-01-30 16:50 수정 2020-01-30 16:54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왼쪽)와 벤야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노골적인 친(親) 이스라엘 구상이라는 비판을 받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중동평화안에 대한 이슬람 국가들의 반응이 아랍 세계의 분열상을 보여준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서 아랍권인 팔레스타인에 일치단결된 지지를 보여줬던 이슬람 국가들이 지정학적 이해득실에 따라 분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는 29일(현지시간) 미국의 중동평화구상에 대한 일부 아랍국가들의 잠정적인 지지 의사 표명은 이들의 팔레스타인을 향한 좌절감 및 이슬라엘과 좀더 협력하려는 의지를 동시에 보여준다고 보도했다. 여전히 많은 이슬람 세계의 지도자들이 팔레스타인 측에 서있지만 일부에서 타협 없는 팔레스타인의 강경한 태도 탓에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강화하지 못하는 데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아랍과 이슬람 세계의 지도자들은 수십년간 팔레스타인 측에 서서 이스라엘 군대는 팔레스타인 땅에서 완전 철수하고, 팔레스타인은 동예루살렘을 수도로 하는 독립 국가를 세워야 한다는 방침을 고수해왔다. 이 같은 상황에서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이 트럼프 구상을 환영하는 외교부 성명을 발표한 것은 이례적이다. 워싱턴 근동정책연구소의 데이비드 마코프스키는 “이·팔 분쟁의 역사에서 이슬람 국가들이 일치단결한 공조를 보이지 않은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사우디와 UAE는 팔레스타인을 향해 트럼프의 구상을 이스라엘과의 새로운 평화협상을 시작하는 계기로 받아들이라고 촉구했다. WSJ는 트럼프 행정부가 정치적 교착상태를 돌파하기 위해 사우디, UAE, 오만, 바레인 등 중동 내 친미 국가 관료들과 접촉해 미국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고, 이들이 어느 정도 호응하면서 성과를 거뒀다고 전했다.

특히 이슬람 수니파 종주국으로서 수니파인 팔레스타인의 가장 중요한 후원자라는 평가를 받았던 사우디의 변모가 눈에 띈다는 평가다.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 사우디 국왕은 팔레스타인에 변함없이 일관된 지지를 보냈고 해당 문제로 정책적 마찰을 빚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 아버지를 대신해 사우디의 실권을 잡고 있는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중동 정책과 관련해 트럼프 행정부와 더 긴밀히 협력하며 밀착하고 있다. 트럼프의 사위이자 백악관 선임고문으로서 미국 정부의 중동 정책을 총괄하고 있는 제러드 쿠슈너는 빈 살만 왕세자와 유세프 알 오타이바 주미 UAE 대사와의 관계를 위해 많은 투자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스라엘은 이 같은 변화에 적극적으로 공조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아랍 내 친미 국가인 사우디와 UAE를 상대로 조용히 유대관계를 확대해왔다. 이스라엘의 고립을 막고, 이슬람 국가들이 ‘팔레스타인 명분’으로 뭉치는 것을 막기 위한 의도였다. 다양한 이스라엘 회사들은 사우디·UAE 회사들과 비밀리에 협력하고 있으며, 사우디 정부는 자국 반체제 인사들을 감시하기 위해 이스라엘의 해킹 툴을 사용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중동 지역 관료들은 WSJ에 “빈 살만 왕세자는 공개적으로 이스라엘을 칭찬했고, 사적으로는 팔레스타인 문제의 중요성을 낮춰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란이라는 공동의 적은 이들의 밀착관계를 촉진하는 촉매제 역할을 하고 있다. 이슬람 시아파 진영의 맹주인 이란은 미국, 이스라엘과 오랜 적대관계를 유지해왔고, 친미 성향의 수니파 국가들과도 중동 내부에서 대립해왔다. WSJ는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사우디·UAE 등 아라비아 반도 주요 국가들의 변화된 어조는 이들 국가들이 이·팔 분쟁을 해결하는 것보다 이란이 제기하는 위협에 더 큰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분석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