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아시안게임에서 할 일을 물은 손흥민·황의조·조현우에게 ‘공과 물(통)을 먼저 들라’고 말했습니다. 헌신하고 희생하면 좋은 반응이 일어납니다. 올림픽에서도 같을 것입니다.”
김학범(60) 한국 23세 이하(U-23) 축구대표팀 감독은 2020 도쿄올림픽 본선에 동행할 18명의 선수를 결정하지 않았다. 연령 제한을 두지 않고 차출할 수 있는 와일드카드 3명도 내정하지 않았다. 유럽파든 K리거든 동등한 경쟁으로 발탁하겠다는 원칙만 세웠다.
선행 조건이 있다. 올림픽 출전에 대한 의지, 그리고 희생과 헌신이다. 올림픽 남자축구 본선 첫 경기가 열리는 7월 23일까지 남은 시간은 175일. ‘김학범호’ 승선 경쟁이 시작됐다.
김 감독은 30일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2020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 우승 및 올림픽 9회 연속 본선 진출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선수에 대한, 그리고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준비했다. ‘더블 스쿼드’를 운영한 로테이션은 순간의 판단이 아닌 훈련의 결과였다”며 “우승은 그 자체로 좋은 것이다. 선수들이 많은 자신감을 얻었다. 성인 대표팀으로 올라갈 연령대에서 한국 축구가 발전할 기회를 얻었다”고 말했다.
김학범호는 AFC U-23 챔피언십에서 조별리그 1차전부터 결승전까지 6전 전승으로 우승했다. 그 결과로 세계 최다인 9회 연속 본선 진출을 달성했다. 1988 서울올림픽부터 32년간 이어온 대기록이다. 일본·이란이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이 대회에서 아시아 최강의 입지를 재확인했다. 이제 중요한 것은 다가오는 올림픽 본선이다.
김 감독의 목표는 2012 런던올림픽 동메달 이상의 성적이다. 그는 “감독이라면 어떤 승부도 피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유럽·남미도 23세 이하인) 올림픽의 연령상 충분히 도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일본 대회여서 안방 이점도 누릴 수 있다”고 기대했다. 그러면서 “일본보다는 위에 있고 싶다”고 덧붙였다. 일본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자국 사상 최고 성적인 동메달을 넘어 금·은메달을 노리고 있다.
관건은 선수 구성에 있다. 특히 와일드카드 3명의 구성이 선수단의 전력을 좌우할 수 있다. 김 감독은 와일드카드를 묻는 질문에 자신이 우승을 지휘했던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을 떠올렸다. 김 감독은 당시 손흥민·황의조·조현우를 와일드카드로 차출했다. 김 감독은 “세 선수가 역할을 물었다. ‘할 것은 없고 공을 들고, 물을 들고, 후배들에게 커피를 사라. 헌신하고 희생하면 좋은 반응이 일어난다’고 했다”며 “(올림픽에서도) 똑같다. 해야 할 일은 헌신이다. 그러면 팀을 하나로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AFC U-23 챔피언십에서 차출이 불발된 백승호(다름슈타트)·이강인(발렌시아)의 올림픽 본선 합류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전망했다. 그는 “팀에 필요한 선수들이다. 이번에 합류하지 못했지만 구단과 이야기가 좋은 방향으로 흘러갔다.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기대했다. 다만 “유럽파라는 이유로 대표팀 합류를 보장할 수 없다. 똑같이 경쟁해 능력을 인정받아야 한다. 올림픽 참가 의지도 중요하다”고 전제했다.
선수단 구성에서 올림픽 메달리스트에게 주어지는 병역 혜택은 무시하고 넘어갈 수 없는 요소다. 김 감독은 병역 혜택 고려 여부를 묻는 질문에 “그걸 이야기하면 벌써 다 밝혀지는 것”이라며 웃었다. 징병제를 시행하는 한국에서 남자 국가대표에게 병역 혜택을 얻을 수 있는 메달권 입상은 강한 동기부여가 될 수밖에 없다. 한국 축구 국가대표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김 감독의 웃음은 메달을 향한 의지도 지켜보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