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美제재대상 ‘화웨이’ 장비 허용… “합리적 타협이지만 미국 화나게 해”

입력 2020-01-29 17:10
한 직원이 28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의 화웨이 5G 센터를 지나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영국 정부가 5세대(5G) 이동통신망 구축사업에 중국 화웨이 장비를 제한적으로 허용했다. 중국 정부가 화웨이를 이용해 미국과 우방의 통신체계를 무너뜨릴 것이라며 보리스 존슨 영국 행정부에 ‘화웨이를 배제해달라’고 요청해온 미국 측은 난색을 표했다. 영국 언론들은 이번 결정이 합리적 선택이라 평가하면서도 미국을 화나게 할 수 있다고 전했다.

영국 가디언, 파이낸셜타임스(FT) 등은 28일(현지시간) 영국 정부가 국가안보회의를 열고 화웨이에 5G 네트워크 장비 사업 권한을 제한적으로 부여하기로 최종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영국 정부는 네트퉈크 비핵심부문에서 화웨이 장비를 허용하기로 했는데, 점유율은 35% 이하로 제한했다.

다만 화웨이를 ‘고위험 공급업체’로 지정해 안보 우려가 있는 네트워크 핵심부문, 군사기지 및 핵시설 등 지리적으로 민감한 곳 등에서는 화웨이의 장비를 배제하기로 했다. 시아란 마틴 영국 국립사이버보안센터장은 “고위험 공급업체는 우리의 가장 민감한 네트워크에 접근한 적이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화웨이는 영국 정부의 결정을 반겼다. 화웨이는 29일 입장문에서 “영국 정부의 결정은 영국이 보다 발전되고 더욱 안전하며, 훨씬 효과적인 비용으로 통신 인프라를 구축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며 “세계 최상의 기술 활용은 보장돼야 하고 다양한 업체가 시장에서 공정하게 경쟁하는 것이 네트워크 안정성과 혁신의 핵심”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미국은 영국이 중국 화웨이 장비를 제한적으로 허용한 데 불만을 표시했다. FT는 트럼프 행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가 “신뢰할 수 없는 네트워크 장비 공급자가 5G 네트워크를 통제하는 경우 안전은 없다”고 비판했다고 전했다. 미국은 국가 안보를 이유로 들며 화웨이 장비 사용을 금지해야 한다고 요구해왔다.

최대 우방국인 미국의 반발이 뻔한 상황에서 영국 정부가 이 같은 결정을 한 것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고 현지 언론들은 전했다. 가디언은 “중국 회사로 인한 안보 우려와 영국의 5G 네트워크를 빠르고 합리적으로 도입할 수 있는 필요 사이에서 현실적인 선택을 시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화웨이 장비는 싸고 성능이 진전됐지만, 중국 정부가 글로벌 감시를 위해 화웨이를 이용할 수 있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면서도 “점유율과 적용 분야를 제한한 것은 (영국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합리적 선택이지만 미국의 화를 부를 수 있다”고 내다봤다.

실제 미 공화당 소속 톰 코튼 상원의원은 NYT에 “영국은 EU에서 벗어났지만 자주권은 중국에 넘겨준 것 아닌가 두렵다”며 미국은 영국과의 정보 공유를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과 영국은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5개국과 함께 상호첩보동맹 ‘파이브아이즈’를 맺고 있다. 5개국은 영미법을 따르기 때문에 법률상 공조가 용이하기 때문이다. 코튼 의원은 “화웨이가 5G 네트워크를 설치하게 내버려 두는 것은 냉전 시기 소련 국가보안위윈회(KGB)가 전화국을 설치하게 하는 것과 같다”며 “중국 공산당은 이제 광범위한 스파이 활동을 수행할 발판을 마련했다”고 덧붙였다.

공화당 벤 사세 상원의원도 “냉전 시대의 마가렛 대처였다면 돈 몇 푼 아끼기 위해 KGB와 계약을 맺지 않았을 것”이라고 영국 정부의 결정을 비판했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