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중동평화안, 이스라엘은 웃고 팔레스타인은 분노했다

입력 2020-01-29 16:37
미국 백악관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함께 중동평화구상을 발표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8일(현지시간) 요르단강 서안의 유대인 정착촌에 대한 이스라엘의 주권을 인정하되 동예루살렘에 팔레스타인 국가를 건설하는 내용의 중동평화구상을 발표했다. 미국은 공정한 중재자를 자처했지만 실질적으로는 이스라엘의 손을 들어준 편향적 구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팔레스타인은 미국의 제안에 대해 “천번이라도 거부하겠다”며 즉각 반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워싱턴DC 백악관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함께 중동평화구상을 발표했다. 팔레스타인 측이 참석하지 않은 일방적인 발표 자리였지만 그는 “양측에 유익한 윈윈(win-win)”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하지만 구상안의 세부 내용은 팔레스타인보다는 이스라엘에 유리하다는 것이 주요 외신들의 평가다. 일견 양측 주장을 일정 부분 수용한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대부분 이스라엘의 요구를 들어줬다는 것이다. AP통신은 “트럼프의 새 제안은 이스라엘을 웃게 하고 팔레스타인을 분노하게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이스라엘은 오랫동안 요르단강 서안의 유대인 정착촌을 자국 영토로 편입하기 위해 애써왔다. 해당 지역은 이스라엘이 1967년 제3차 중동전쟁 후 불법 점령했다가 1993년 오슬로 평화협정으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가 세워진 곳이다. 유엔은 유대인 정착촌을 불법으로 간주하고 있지만 서안을 군사적 요충지로 여기는 이스라엘은 국제사회의 반대에도 의도적으로 정착촌을 늘려왔다. 협정 당시 10만명 정도였던 유대인 거주자는 현재 40만명으로 늘어난 상태다.

미국은 유대인 정착촌의 이스라엘 주권을 인정하는 대신 향후 4년간 새 정착촌을 건설하지 못하도록 했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공동 성지인 예루살렘에 대해서는 모든 종교인의 참배 자유를 보장한다면서도 이스라엘이 예루살렘 보호조치를 이어나가도록 했다. 이스라엘에 성지 통제권을 부여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완전한, 매우 중요한 수도로 남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예루살렘을 분할하고 서안·가자지구에 완전한 팔레스타인 독립국을 세우도록 하는 국제사회의 ‘2국가 해법’ 기조와 어긋나는 구상이다.

팔레스타인에는 동예루살렘의 일부 아랍인 거주지역을 수도로 정식 국가를 건설할 것을 제안했다. 국가 건설과 대사관 설립에는 500억 달러(약 58조7350억원)의 국제 금융을 제공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마저도 반쪽짜리라는 비판이 나온다. 사실상 영구적인 안보주권 포기 조건을 내걸었기 때문이다. 구상안에 따르면 팔레스타인은 국가 지위를 가져도 상비군을 보유할 수 없다. 이스라엘의 안보에 위협이 되는 하마스 등 이스라엘에 저항하는 팔레스타인 무장정파도 해체시켜야 한다. CNN은 “팔레스타인의 영토에 동예루살렘의 핵심 부분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이번 구상을 막후에서 주도한 인물들의 배경도 논란이 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인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고문과 이스라엘 주재 미국 대사 데이비드 프리드먼, 미국의 중동평화협상 특사였던 제이슨 그린블랫은 모두 유대계로 이번 구상안을 이스라엘 측에 유리하게 설계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이들이 요르단강 서안지구의 불법 유대인 정착촌과 긴밀한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미국이 2017년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인정한 이래 트럼프 행정부와의 협상을 거부하고 있는 팔레스타인은 이번 구상안에 분개했다. 마무드 아바스 PA 수반은 “예루살렘은 흥정의 대상이 아니다. 팔레스타인 민족은 미국의 구상을 역사의 쓰레기통으로 보낼 것”이라고 밝혔다. 하마스는 무장 투쟁도 불사하겠다는 방침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이번 구상에 대해 “성공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제안”이라고 평가절하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