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신종 코로나)에 대한 불안감이 확산되면서 유럽에서 애꿎은 아시아계 교민들이 불편한 시선과 차별을 겪는 경우가 늘고 있다. 중국계뿐만 아니라 아시아계 전반으로 혐오와 차별의 정서가 번지면서 현지인들에게 욕설을 듣거나 조롱을 당하자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는 ‘나는 바이러스가 아니다’(#JeNeSuisPasUnVirus)라는 해시태그 캠페인도 시작됐다.
유럽에서 신종 코로나 확진자가 처음 나온 프랑스에서는 한 아시아계 프랑스인 남성이 28일(현지시간) BFM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한 무리의 청소년들에게 둘러싸여 욕설을 들었다고 전했다. 그는 파리 시내의 한 스포츠센터에서 나오는 길이었다고 설명하며 “7~8명 되는 무리 중 한 남자아이가 내 쪽으로 시선을 두지도 않은 채 ‘코로나바이러스가 온다!’고 소리치면서 비웃었다”고 말했다.
재불교포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대중교통이나 상점에서 겪은 불쾌한 경험들이 속속 공유되고 있다. 상점에서 현금으로 계산할 때 점원이 지폐나 동전을 손으로 받지 않고 테이블에 놓으라고 불쾌하게 손짓을 한다거나 학교에서 교사가 아시아계 학생에게만 손 세정제를 사용하라고 강권한다는 등의 경험담이 이어졌다.
한 재불교포는 “나를 향해 프랑스인들이 코로나바이러스라고 비웃어 기분이 매우 나빴다”며 “확진자가 늘면서 인종차별도 늘 것 같다”고 우려를 표했다.
특히 SNS에서는 아시아계 교민들을 향한 무차별적 혐오 발언들이 넘쳐나고 있다. 한 프랑스인 트위터 사용자는 기관총을 쏘는 영상을 올리고 “중국인을 보면 이렇게 하겠다”고 적어 비난을 샀다. 또 한 아시아계 교민이 자신은 중국인이 아닌 다른 아시아 지역 출신이니 인종차별적 언행을 하지 말아달라고 적은 글에는 구토를 하는 영상이 답글로 달리는 등 조롱을 당한 경우도 있었다.
신종 코로나 확진자가 나온 이후 프랑스에서 아시아계에 대한 차별 행태가 줄을 잇자 해시태그 캠페인도 벌어지기 시작했다. 아시아에서 입양된 한 프랑스인 여성은 트위터와 페이스북에서 ‘나는 바이러스가 아니다’(#JeNeSuisPasUnVirus)라는 해시태그 캠페인을 시작해 확산하고 있다. 그는 해시태그를 적은 종이를 들고 눈만 보이게 사진을 찍어 공유하며 캠페인 확산을 독려했다.
이 여성은 “공공장소에서 내가 기침을 하지 않는데도 남들이 어떻게 행동할지를 걱정하게 된다”며 “아시아계에 대한 인종차별은 저평가되거나 아예 다뤄지지도 않는다. 바이러스보다 더 나쁜 건 시스템적인 인종차별”이라고 말했다.
신종 코로나 확진자가 나온 독일에서도 아시아계에 대한 차별이 이어지면서 독일 교포 온라인 커뮤니티에도 인종차별을 당했다는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한 재독교포 온라인 카페에는 “재채기를 딱 한 번 했더니 옆에 앉은 (독일인) 직원이 코로나바이러스 어쩌고 하면서 눈치를 주며 본인과 ‘거리를 유지하자’고 하더라”며 “동양인이라 그러는 것 같다”는 글이 올라왔다.
이 카페에는 상점에서 물건을 사고 나오는데 한 남성이 “너희 나라는 왜 박쥐와 쥐를 먹어서 병을 퍼트리느냐”는 말을 들었다는 내용이 올라오기도 했다. 작성자를 중국인이라 생각해 벌어진 무차별적 인종차별인 셈이다.
아직 확진자가 발생하지 않은 영국은 상대적으로 중국인에 대한 경계심이 크지 않은 상황이다. 아시아계 차별이나 ‘제노포비아’(외국인 혐오) 사건도 아직은 발생하지 않았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가 전 세계적으로 번질수록 영국에서도 아시아계에 대한 시선이 나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BBC방송에 따르면 사립학교를 포함해 영국 550여 기숙학교가 속해있는 ‘기숙학교협회’(The Boarding School's Association)는 중국인 학생에 대한 차별적 언행이 나오지 않도록 선제적으로 각 학교에 주의를 촉구하는 지침을 내놨다. 중국 학생들은 영국 사립학교 내 외국인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협회가 내놓은 지침은 중국인 학생이나 부모가 겨울방학 동안 중국을 다녀왔을 가능성이 큰 만큼 이들을 꺼리는 분위기가 형성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그러한 편견이 있는 행동은 절대 용인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또 2월 중간방학 기간에 중국이나 홍콩에 여행을 가지 않도록 학부모들에게 권고하라고 적었다.
한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유입에 대한 공포심이 커지며 이탈리아에서도 중국계 교민들이 인종차별적 언행을 겪는 경우가 늘고 있다. 지난 26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밀라노 인근에서 열린 유소년 축구경기 도중 한 소년이 상대팀에 소속된 14살 중국계 소년에게 “너도 중국에 있는 사람들처럼 바이러스에 걸렸으면 좋겠다”고 독설을 퍼부은 일이 있었다. 지난주에는 베네치아에서 현지 10대 청소년들이 중국인 관광객 부부에게 침을 뱉고 욕설을 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에 로마의 중국계 커뮤니티 대변인인 루치아 킹은 최근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중국인을 겨냥한 불관용과 차별이 근절되길 희망한다”며 “누구나 바이러스에 걸릴 수 있다. 이는 인종과 관계가 없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