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도라 상자’ 된 볼턴 저서 “트럼프의 친독재자 취향 못마땅”

입력 2020-01-28 17:58 수정 2020-01-28 18:25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바라보는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출간을 앞둔 저서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친(親) 독재자 취향에 대한 우려를 실은 것으로 알려졌다. 아직 발간도 되지 않은 볼턴 저서에 실린 민감한 뒷얘기가 연일 언론에 공개되며 트럼프 탄핵 심판의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27일(현지시간) 오는 3월 17일 출간 예정인 볼턴의 저서 ‘상황이 벌어진 방: 백악관 회고록’의 내용을 전날에 이어 이틀 연속 공개했다. 회고록에 따르면 볼턴은 트럼프 대통령이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같은 독재자들에게 사적인 호의를 베푸는 것에 대해 윌리엄 바 법무장관과 우려를 공유한 것으로 전해졌다.

바 장관은 볼턴의 염려에 터키와 중국 기업에 대한 미 법무부 차원의 조사가 진행 중인 사실을 언급하며 트럼프 대통령이 독립적 조사 권한을 가지고 있는 법무부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모양새를 취할까봐 걱정스럽다는 반응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바 장관은 볼턴과의 대화에서 두 기업의 이름도 특정했다. 중국 통신회사 ZTE와 터키 2대 국유은행 할크방크였다.

ZTE는 북한과 이란을 비롯해 미국의 제재에 놓여있는 국가들과 사업을 진행한 혐의로 유죄가 인정돼 2017년 거액의 과징금을 문 회사다. 저서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후 시 주석과 ZTE 관련 대화를 나눴고 2018년 측근들과 공화당 의원들의 반대에도 ZTE에 대한 제재를 해제했다. 할크방크 역시 2018년 이란 정부가 미국의 제재를 피해 돈 세탁을 할 수 있도록 협조했다는 혐의로 미 법무부의 조사를 받고 있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할크방크에 대한 추가 제재를 중단해달라고 개인적으로 부탁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기자들에게 트럼프 대통령이 행정부에 추가 제재 중단 지침을 내리기로 약속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독재자들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포용적 태도는 외교·안보 전문가들과 그의 반대자들에게서 오랫동안 문제로 지적받아온 점이다. NYT는 “볼턴의 저서는 트럼프의 친독재 취향에 대한 불안감이 이들 뿐만 아니라 트럼프의 신임을 받는 행정부 고위 관료들 사이에서도 존재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독재자 예찬은 이미 여러 차례 구설에 올랐다.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내세워온 미국 정부의 국가 안보 및 외교 정책과는 결이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는 지난해 11월 에르도안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엄청난 팬”이라며 그를 치켜세워줬다. 트럼프 행정부의 시리아 주둔 미군 철수 결정으로 터키에 시리아 북부 침공의 길을 열어준 뒤 벌어진 일이다. 그는 이집트의 독재자 압델 파타 엘시시 대통령을 향해 “내가 제일 좋아하는 독재자”라고 말했고,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에 대해서도 공개 칭찬하며 “그와 사랑에 빠졌다”고 발언한 바 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