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 독일이 자행한 유대인 대학살(홀로코스트) 생존자들과 세계 각국 지도자들이 27일(현지시간) 폴란드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해방 75주년을 맞아 옛 수용소 현장을 찾아 희생자의 넋을 기렸다. 참가자들은 유럽을 포함한 전 세계에서 고조되는 반유대주의와 인종 증오에 강한 우려를 표명하며 국제사회가 연대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A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이스라엘과 미국, 호주, 러시아에서 온 홀로코스트 생존자 약 200명과 세계 50여개국 대표단 등 참가자들은 아우슈비츠 수용소 ‘죽음의 문’ 앞에서 추모식을 가졌다.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은 “우리는 홀로코스트를 직접 목격한 마지막 생존자들과 함께 모였다”며 “이곳은 엄청난 범죄가 자행된 현장이지만 우리는 이를 외면해서도, 잊어서도 안된다”고 말했다.
75년 전인 1945년 1월 27일 나치 독일군을 겨냥한 대규모 반격에 나선 소련군은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를 점령하고 수감자 7500여명을 해방했다. 아우슈비츠는 나치 독일이 세운 최대 규모의 강제수용소로 이곳에서만 100만명 이상의 유대인이 학살된 것으로 추정된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건물은 197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됐다.
로널드 로더 세계유대인회의 회장은 빨간 코트를 입은 자신의 어린 딸과 강제로 헤어져 다시는 볼 수 없게 됐던 사연을 들려주며 “세계는 마침내 가스실의 모습을 목격했다. 올바른 정신을 가진 사람이었다면 누구도 나치에 협력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하지만 나는 유대인 증오 정서가 공공연하고도 빠르게 확산되는 모습을 보게 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며 “침묵하지도, 안심하지도 말고 이런 일이 다시 벌어지지 않도록 하자”고 말했다.
93세 폴란드 유대인 생존자인 마리안 투르스키는 나치 독일이 사회적으로 용인할 만한 작은 유대인 탄압에서 시작해 대학살로 이르게 됐다는 점을 언급하며 미래 세대에게 메시지를 던졌다. 베를린 시내에서 유대인의 벤치 착석을 앉지 금지한 규제에서 시작해 강제거주지역(게토), 집단수용소로 단계적으로 나아갔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끔찍한 일이 미국에서도 벌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투르스키는 “아우슈비츠는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았다”며 “당신들이 무관심하다면 (아우슈비츠가) 당신의 머리 위에 있는지도 모를 것이다. 그리고 우리 후손들의 머리 위로 또 다른 아우슈비츠가 하늘에서 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