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우한 폐렴) 쇼크로 28일 국내 금융시장이 ‘검은 화요일’에 빠졌다. 설 연휴가 끝나고 그동안 쏟아진 악재가 한꺼번에 반영되면서 코스피지수 2200선이 무너졌다. 안전자산인 금과 채권 값은 치솟았다. 세계 2위 경제대국 중국과의 교역량이 많은 한국으로선 이미 ‘경제 영향권’에 들어섰다.
이날 국내 주식시장에선 외국인과 기관투자가 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코스피지수는 연휴 전 거래일보다 69.41포인트(3.09%) 내린 2176.72에 장을 마쳤다. 미·중 무역분쟁과 한·일 경제전쟁이 동시에 불거진 지난해 8월 5일(-2.56%)보다 낙폭이 컸다. 외국인(5248억원)과 기관(1922억원)이 ‘쌍끌이 팔자’에 나서면서 삼성전자(-3.29%) SK하이닉스(-2.43%) 네이버(-2.46%) 등 시가총액 상위 종목이 줄줄이 미끄럼을 탔다. 특히 중국소비주로 꼽히는 면세점·화장품·여행·항공 업종에선 10% 넘게 폭락하는 종목이 속출했다. 코스닥지수도 전 거래일 대비 3.04% 떨어진 664.70에 마감했다.
‘우한 공포(포비아)’에 빠진 건 한국 증시 만이 아니다. 전일 미국 뉴욕증시 3대 지수는 1.57~1.89% 하락했고, 일본 니케이225 지수(-0.55%)는 이틀 연속 내림세를 기록했다. 지난 23일 2.75% 폭락했던 중국 증시는 춘제(春節·중국의 설) 연휴가 다음 달 2일까지 연장되면서 급락세를 간신히 멈췄다.
환율도 출렁였다.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8.0원(0.68%) 오르며 달러당 1176.7원에 거래를 마쳤다. 안전자산인 금의 현물가격은 한때 온스당 1581달러까지 치솟았다. 2013년 4월 이후 6년9개월 만에 최고치다.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도 전 거래일보다 7.2bp(1bp=0.01% 포인트) 내린 연 1.352%에 마감했다. 채권 금리 하락은 채권 가치 상승을 의미한다.
정부는 이날 긴급회의를 열고 “시장 불안이 확대될 경우 컨틴전시 플랜(비상계획)에 따라 신속하게 안정 조치를 취하겠다”고 강조했다. 한국은행도 이주열 총재 지시로 ‘신종 코로나 대책반’을 꾸리고 24시간 국내외 금융시장 동향 모니터링에 들어갔다.
글로벌 금융시장은 2003년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사스·SARS)보다 빠른 전파력을 보이는 우한 폐렴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사스 사태 당시 중국의 내수 경기가 크게 위축되면서 소매판매·산업생산 지수가 급감했었다. 한국도 대중(對中) 수출과 중국 관광객 수에서 4개월가량 역성장을 겪었었다.
그러나 중국이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은 당시보다 커졌다. 2003년 중국 국내총생산(GDP)이 전 세계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3%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16.75%에 이른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중국 경제가 미·중 무역분쟁으로 이미 내상을 입은 상황에서 우한 폐렴까지 장기화하면 펀더멘털(기초체력)에 치명상을 입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
양민철 최지웅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