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송환 피하려는 ‘최순실 집사’… 네덜란드어 익혀 적극 변론

입력 2020-01-28 14:53 수정 2023-04-09 16:34
최순실씨. 뉴시스

‘최순실 집사’로 알려진 데이비드 윤(한국명 윤영식·52)씨가 자신의 한국 송환 여부를 심리하기 위해 네덜란드에서 열린 재판에 참석해 송환 불허를 요청했다.

백발의 윤씨는 27일(현지시간) 네덜란드 하를렘의 노르트홀란트주 법원에서 열린 재판에 셔츠 차림의 평상복을 입고 출석했다. 그는 시종일관 여유로운 태도로 자신이 송환을 거부하는 이유를 직접 설명했다.

먼저 그는 “한국에는 사법정의가 존재하지 않는다. 송환되면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없게 된다”고 주장했다. 국내 신문 기사 등을 꺼내 든 윤씨는 “이 사건은 사기나 알선수재 등과 같은 형사 사건이 아니다”라며 “박근혜 전 대통령, 최순실씨 등이 연루된 정치적 사건”이라고 강조했다.

윤씨는 또 자신이 최씨의 국내외 은닉재산을 파악하고 있을 것이라는 의혹을 의식이라도 한 듯 “한국 검찰은 최씨 일가의 돈을 찾기 위해 나를 송환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나를 기소하려는 검사 중 일부는 변호사 시절 나와 관련된 사건을 수임해 나에 대해 잘 안다. 이해 상충의 문제가 있다”는 논리를 펴기도 했다.

그동안 윤씨는 하를렘 인근 구치소 독방에 7개월여간 갇혀 있으면서 현지 변호인을 선임해 재판을 대비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재판에서 윤씨는 영어와 독일어뿐만 아니라 구치소에서 새로 익힌 네덜란드어까지 비교적 유창하게 구사해 눈길을 끌었다.

윤씨 변호인의 요청으로 비공개로 진행된 이날 심리는 애초 1시간30분으로 예정돼 있었지만 윤씨와 변호인의 적극적인 변론에 따라 두 배 이상 길어졌다.

네덜란드 하를렘 노르트홀란트주 법원은 27일(현지시간) 데이비드 윤의 한국 송환 여부를 심리하는 재판을 비공개로 진행했다. 사진은 재판이 열린 스파르나 법정. 연합뉴스

독일 영주권자인 윤씨는 박 전 대통령이 독일을 방문했을 때 통역을 맡았으며 최씨와 그의 딸 정유라씨의 생활 전반을 보살피는 집사 역할도 맡은 인물이다. 그는 최씨가 삼성으로부터 승마 관련 지원을 받는 과정에 적극 협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더불어민주당 안민석 의원은 지난해 6월 라디오 인터뷰에서 “윤씨는 최씨의 해외 은닉재산 규모와 자금세탁 경로를 알고 있는 ‘키맨’이며 돈세탁 전문가”라고 말했다.

현재 윤씨는 2016년 초 서울 서초구 내곡동 헌인마을 부지가 뉴스테이 지구로 지정될 수 있도록 해달라는 부동산 업자의 청탁을 받고 작업비 명목으로 3억원을 받은 혐의 등을 받고 있다. 윤씨는 같은 해 9월 독일로 출국해 종적을 감췄지만 인터폴 적색수배, 여권 무효화 등 조치 끝에 지난해 6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스카폴 공항에서 검거됐다. 윤씨와 범행을 공모한 A씨의 경우 이미 지난해 4월 대법원에서 징역 3년6개월과 추징금 1억5000만원의 형을 선고받았다.

윤씨에 대한 송환 허가 여부는 2월 10일쯤 결정된다. 윤씨에게는 네덜란드 대법원에 한 차례 상소할 기회가 남아있으며 법무부 장관의 최종 결정에 따라 송환이 확정된다. 다만 대법원의 결정이 지연되거나 윤씨가 법무부 장관의 최종 결정에 대해 다시 네덜란드 정부를 상대로 단심 재판을 요구할 가능성도 있어 연내 송환은 단정하기 어렵다.

윤씨가 최후의 수단으로 정치적 망명을 별도 신청하는 것도 가능하다. 반면 법원이 송환을 불허할 경우 윤씨는 즉시 석방된다. 한국 법무부를 대리해 재판에 출석한 네덜란드 법무부 소속 헨리 틸라트 검사는 “웬만하면 송환 결정이 날 것”이라면서도 “윤씨가 송환되지 않기 위해 무엇이든지 다 할 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박실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