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혈통’ 김경희 앞세운 김정은…내부 결속으로 대북 제재 정면 돌파

입력 2020-01-27 18:32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설 당일인 25일 삼지연극장에서 부인 리설주 여사와 함께 명절 기념공연을 관람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6일 보도했다. 이날 행사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여동생이자 처형된 장성택의 부인이었던 김경희 전 노동당 비서(왼쪽 네번째)가 2013년 9월 9일 이후 처음으로 공개석상에 등장했다. 왼쪽부터 최룡해 국무위원회 제1부위원장, 김정은 위원장, 리설주 여사, 김경희 전 노동당 비서, 김여정 당 제1부부장.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고모 김경희를 갑자기 등장시킨 것은 대내외 고립 상황을 정면돌파로 극복하겠다고 천명한 것의 후속 조치 중 하나로 보인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여동생으로 ‘백두혈통’ 2세대인 김경희 전 노동당 비서를 앞세워 ‘정면돌파전’에 필요한 내부 동력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고령의 나이(74세)와 건강 문제를 감안하면 향후 김 전 비서의 역할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설 당일인 지난 25일 삼지연극장에서 부인 리설주 여사와 함께 명절 기념공연을 관람했다고 조선중앙TV가 26일 보도했다. 최룡해 국무위원회 제1부위원장,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여동생이자 처형된 장성택의 부인이었던 김경희 전 노동당 비서, 리일환 노동당 부위원장, 조용원·김여정 당 제1부부장, 현송월 부부장이 함께 공연을 관람했다. 김경희는 2013년 12월 장성택 처형 6년여만에 처음으로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연합뉴스

북한 매체에 따르면 김 전 비서는 김 위원장과 리설주 여사, 최룡해 국무위원회 제1부위원장, 김여정 당 제1부부장 등과 함께 설 당일(25일) 평양 삼지연극장에서 설 기념공연을 관람했다. 2013년 9월 9일 노농적위군 열병식 참석이 김 전 비서의 마지막 공개 활동인데, 6년4개월 만에 공개 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는 2013년 12월 남편 장성택이 ‘반혁명분자’로 처형된 이후 두문불출해 남편과 함께 숙청됐다는 설, 독살설, 자살설 등 온갖 추측에 휩싸였었다. 검은색 한복을 입은 김 전 비서는 리 여사와 김 제1부부장 사이에 앉아 공연을 봤다.

김 위원장은 내부 결속을 다지기 위해 김 전 비서를 깜짝 등장시킨 것으로 보인다. 올해 국가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종료되는데,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와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 결렬 등으로 상황이 매우 좋지 않다. 김 위원장으로서는 2, 3세대 백두혈통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 난관을 돌파하자는 메시지를 주민들에게 전달할 필요가 있다.

최용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안보전략연구실장은 27일 “대북 제재와 북·미 비핵화 협상 중단으로 김 위원장이 직면한 대내외 상황이 녹록지 않은 것이 현실”이라며 “김일성 주석의 장녀인 김 전 비서를 활용해 체재 결속을 꾀하고 이를 통해 성과를 창출하겠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도 “내부 결속 차원에서 김 전 비서를 앞세운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아울러 이번 기회를 통해 자신이 고모를 독살했다는 오명을 깨끗이 씻어내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 CNN방송은 2014년 김 위원장이 김 전 비서 독살을 지시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정 센터장은 “김 위원장이 자신과 고모 사이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점을 대내외에 과시한 것 같다”며 “자신을 향한 부정적 이미지를 개선하려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태영호 전 주영국 북한 공사도 “만일 김경희가 갑자기 죽는다면 김정은은 영원히 고모를 독살했다는 누명에서 벗어나기 힘들다”고 했다.

다만 김 전 비서의 역할은 제한적일 것으로 전망된다. 고령인 데다 김 위원장 중심의 세대교체가 완료됐기 때문이다. 정 센터장은 “김정일 생일(2월 16일)과 김일성 주석의 생일(4월 15일) 등 백두혈통 일가 행사에 김 전 비서가 참석할 확률이 높다”고 평가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 대학교 교수도 “김경희의 등장은 권력으로의 북귀가 아니라 백두혈통의 어른으로서 복귀 의미가 있다”며 “김정은 유일영도체제가 안정화돼 있음을 대내외에 과시하려는 의도도 있다”고 했다.

1946년생인 김 전 비서는 1972년 장성택과 결혼했으며 딸 장금송이 2006년 프랑스 유학 중 사망해 자식은 없다. 김 전 비서는 당 국제부 부부장, 당 경공업부 부장, 인민군 대장, 당 정치국 위원 등 요직을 두루 지냈다.

손재호 기자 sayh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