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민주당 대선주자인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의 상승세가 심상치 않다. 아이오와주에 이어 뉴햄프셔주에서도 지지율 1위라는 조사 결과가 나오며 뒷심을 발휘하고 있다. 극좌 성향으로 본선 경쟁력이 약하다는 평가를 받는 샌더스가 민주당 최종 대선후보에 오르는 데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미 NBC방송은 26일(현지시간) 메리스트 대학 여론조사 연구소와 공동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샌더스 의원이 22%의 지지율로 1위를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피트 부티지지 인디애나주 사우스벤드 시장이 17%로 그 뒤를 추격했다. 이번 조사는 지난 20~23일 뉴햄프셔주 민주당 프라이머리(예비선거)에 유권자로 참여할 가능성이 있는 697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샌더스 의원은 25일 발표된 뉴욕타임스(NYT)의 아이오와주 여론조사에서도 1위를 기록했다. NYT는 시에나 대학과 지난 20~23일 아이오와주 등록 유권자 1689명을 대상으로 민주당 경선후보 지지도 조사를 실시한 결과 샌더스 의원이 25%로 가장 많은 지지를 받았다고 전했다.
아이오와 코커스(당원대회)와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예비선거)는 후보 경선의 풍향계로 통한다. 미국 주 가운데 가장 먼저 경선 레이스가 치러지는 이 두 개 주에서 승리한 후보는 고지를 선점하면서 상대 후보의 기선을 제압할 수 있다. 초반부 승패에 따라 선거자금 모금과 언론의 주목도 면에서 명암이 갈리기에 승리 후보는 여세를 몰아 상승세를 이어갈 수 있다.
아웃사이더인 샌더스 의원이 전체 판도의 가늠자 역할을 하는 두 개 주에서 지지율 선두를 달리는 데 대해 민주당 주류 그룹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샌더스는 지난 2016년 대선 당시에도 민주당 주류 세력을 대표하는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과 치열한 당내 경합을 벌였다. 샌더스가 극좌 성향의 선거 캠페인으로 경선 초반 돌풍을 일으키자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대세론에 손상을 입었다. 힘겹게 본선에 진출한 클린턴 전 장관은 민주당 진영이 온건파와 급진파로 양분된 상황에서 경쟁자였던 트럼프 대통령에 고전할 수 밖에 없었다. 민주당 주류 그룹은 2016년의 상황이 2020년에도 똑같이 반복되는 것에 대해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여론조사마다 편차가 있고, 전국 조사에서는 여전히 바이든 전 부통령이 1위를 유지하고 있어 ‘샌더스 돌풍’을 거론하기에는 이르다는 평가도 나온다. 민주당 원로들의 견제도 이어지고 있다. 클린턴 전 장관은 샌더스를 겨냥해 “헛소리만 늘어놓는 아무도 좋아하지 않은 인물”이라고 저격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도 샌더스가 민주당 경선에서 앞서나갈 경우 그의 극좌 공약에 반대 목소리를 내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