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영국 등 자국민 ‘우한 탈출’ 비상…아베 “희망자 전원 귀국”

입력 2020-01-27 16:05 수정 2020-01-27 16:06
우한에서 의약품을 나르는 구급차 운전기사.EPA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우한 폐렴’ 확진 환자가 급속히 늘어나자 미국과 영국, 프랑스 등 각국 정부가 봉쇄된 우한에 전세기 등을 투입키로 하는 등 자국민 보호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중국 정부는 우한 폐렴 확산을 막기 위해 춘제(春節·설) 연휴를 다음 달 2일까지 연장하고 학교의 개학시기도 늦추기로 했다. 수억 명이 다시 대이동을 시작하고 사람들이 모이면 걷잡을 수 없는 전염 사태가 우려되기 때문이다.

27일 BBC 등에 따르면 영국 외무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진원지인 중국 후베이성 우한 일대에 체류 중인 자국민을 대피시키기 위해 전세기를 띄우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중국 정부는 우한에서 출발하는 항공기, 기차 운행을 모두 중단하고 우한을 빠져나가는 고속도로와 일반도로까지 봉쇄해 외국인들도 우한에서 발이 묶여 있다.

우한시는 대중교통과 차량호출 서비스 중단에 이어 시내 중심부에서 허가를 얻은 물품 운송차량이나 무료 수송차량, 공무용 차량을 제외한 차량은 운행할 수 없다고 공지했다. 대신 택시 6000대를 긴급 징발해 각 단지에 배치해 무료로 운영하기 시작했다.

우한 주변의 후베이성 도시들도 우한시와 비슷한 봉쇄령을 내려 철도와 버스 등이 모두 운행을 중단했다. 따라서 우한시와 후베이성 내 주변 도시에서는 개인 차량이 없으면 이동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현재 후베이성에 체류 중인 한 영국인은 “하루 뒤에 항공편으로 귀국할 예정이지만 가능할지 모르겠다”면서 “영국 정부가 나 같은 처지의 사람들에 관심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숙소에 나흘째 발이 묶여 있다는 영국 여성 소피도 “앞으로 몇 주간 여기 있어야 할 수도 있다. 숙소에 있을지 나가서 이 나라를 떠야 할지도 잘 모르겠다. 두렵다”고 말했다.

병원서 집중 치료받는 '우한 폐렴' 환자.신화연합뉴스

미국은 자국민을 전세기로 대피시키는 절차에 이미 착수했다. 미 국무부는 우한시에 머무르는 영사관 직원 등을 태울 전세기가 오는 28일 중국 우한에서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출발한다고 밝혔다. 다만 모든 민간인을 수용할 만큼 충분한 좌석을 확보하지는 못했다고 국무부는 전했다.

국무부는 “좌석이 극히 제한적이어서 빠른 속도로 번지는 코로나바이러스에 쉽게 감염될 우려가 큰 사람들에게 우선권을 주겠다”고 설명했다. 미국 정부는 우한 주재 미국 영사관도 일시 폐쇄키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우한시에 거주하는 미국인은 1000여 명으로 추정된다.

일본 정부도 우한에 머무는 자국민을 귀국시키기 위해 중국 정부와 협의를 시작했다.

일본 외무성은 이동을 희망하는 일본인을 모집한 후 민간 항공사 전세기를 이용해 일본으로 이송하는 방안 등 자국민 보호 대책을 조율 중이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중국 정부와 협의해 희망자를 전원 일본으로 귀국시키겠다고 밝혔다. 호주도 자국민을 우한 밖으로 내보내기 위한 방안을 검토 중이다.

프랑스 정부는 우한에 거주하는 자국민을 버스에 태워 인근 후난성 창사시로 옮기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프랑스 자동차 제조업체 푸조·시트로엥(PSA) 그룹은 우한에서 근무 중인 직원과 가족 등 38명이 우한에서 대피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 정부도 교민들을 상대로 수요조사를 한 뒤 전세기를 띄우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우한 폐렴' 환자들을 집중 치료하는 진인탄 병원.

중국 국무원은 27일 통지를 통해 올해 춘절 연휴를 2월 2일까지로 연장하고 정상 출근은 3일부터 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또 각 지역의 대학과 전문대학, 초중고등학교, 유치원의 개학을 연기하기로 했고, 구체적인 일정은 교육부가 별도로 통보하기로 했다.

베이징시와 상하이시는 26일부터 시를 넘나드는 버스 운행을 중단시켰다. 베이징시는 춘제에 고향을 다녀온 시민들에게 자택 격리 2주를 권고하는 공지를 내렸으며 일부 학교는 2월 17일까지 개학을 연기했다. 시안(西安)도 도시를 넘나드는 장거리 버스와 관광버스 운행을 일시 중단했다.

중국 국가위생 건강위원회는 27일 0시 기준으로 홍콩과 대만, 마카오를 포함한 중화권 전역에서 ‘우한 폐렴’ 확진자는 전날에 비해 769명 증가한 2744명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사망자는 80명으로 전날보다 24명이 늘었다. 의심환자는 5794건으로 하루 사이에 3806명이나 증가했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