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축구의 지평 넓힌 김학범의 ‘로테이션 축구’

입력 2020-01-27 14:48
한국 U-23 대표팀 선수들이 26일 오후(현지시간) 태국 방콕 라자망갈라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0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 한국과 사우디아라비아의 결승전에서 우승을 차지한 뒤 김학범 감독을 헹가래 치고 있다. 연합뉴스

김학범호가 아시아축구연맹(AFC) 23세 이하(U-23) 챔피언십에서 첫 우승을 차지했다. 이번 대회에서 김 감독은 매 경기 선발 선수를 과감히 교체하는 ‘로테이션 축구’로 주전과 비주전의 간극을 없앴다. 감독의 믿음 속에 선수들은 누가 나서도 제 몫을 다 하며 원 팀으로 뭉쳤다. ‘학범슨’으로 불리는 김 감독의 과감한 용병술이 ‘벤치 멤버는 전력 외’라는 기존의 통념의 깨뜨리고 우승의 원동력이 됐단 평가다.

김학범 감독이 이끄는 U-23 대표팀은 26일 태국 방콕의 라자망갈라 스타디움에서 열린 대회 결승전에서 연장 후반 8분 터진 정태욱(대구)의 헤더 결승골로 사우디아라비아를 1대 0으로 격침시키며 극적으로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결승에 올라 이미 9회 연속 올림픽 진출을 확정지었던 한국은 이날 승리로 2014년부터 2년 주기로 열린 이 대회 4번째 출전 만에 첫 우승을 차지했다. 조별리그부터 토너먼트까지 6전 전승 우승이라는 완벽한 행보였다. 총 10골을 넣어 참가국 중 최다 득점을 기록하기도 했다.

개인 타이틀도 한국 선수들의 차지였다. 조별리그 2차전부터 매 경기 출전해 한국의 중원을 든든히 지켜낸 원두재(울산)가 대회 최우수선수(MVP)로, 6경기 모두 풀타임 출전해 3실점으로 골문을 방어한 송범근(전북)은 베스트 골키퍼로 선정됐다.

한국이 ‘무결점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던 비결은 통념을 깬 로테이션 축구의 힘이다. 토너먼트 대회에선 확정지은 베스트 멤버를 큰 폭의 변화 없이 끌고 가는 게 기존 통념이었다. 주전과 비주전 선수들의 기량차가 없을 수 없기에, 단기간 열리는 대회에서 최대한 전력을 집중시켜 성적을 내려면 주전을 계속 기용하는 게 ‘안전한’ 선택이어서다.

하지만 태국의 환경적 변수를 무시할 순 없었다. 30도가 넘는 기온에 40% 이상의 습도까지, 무더위가 각국 선수단을 괴롭혔다. 그 속에서 지난 9일부터 3~4일 간격으로 6경기나 치러지는 강행군을 견뎌내야 했다.

김학범 감독이 26일 오후(현지시간) 태국 방콕 라자망갈라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0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 한국과 사우디아라비아의 결승전에서 이상민(가운데)과 정태욱에게 작전 지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 감독의 선택은 과감한 로테이션이었다. 한국은 매 경기 변화무쌍한 선발 라인업으로 화제를 모았다. 조별리그 2차전부터 한국의 선발 라인업은 7명→6명→8명→5명→3명이 교체됐다. 그런 가운데 스트라이커 오세훈(상주)과 조규성(안양)이 번갈아 선발로 투입되며 2골씩 올렸고, 이동준(부산), 이동경(울산)까지 멀티골 이상 기록한 선수가 4명이나 된다.

로테이션의 성공으로 두 마리 토끼를 잡는데 성공한 한국이다. 애초 최우선 목표였던 2020 도쿄올림픽 출전권 획득은 물론 장차 A대표팀의 중추로 성장할 어린 선수들이 모두 큰 토너먼트 대회에서 뛰는 경험까지 얻었다.

김 감독도 우승 직후 “골키퍼 2명을 제외한 21명의 선수가 모두 그라운드에 나와 자기 임무를 충실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팀이 아무 문제없이 녹아든 게 가장 값진 결과”라며 “특출난 선수가 없지만 한 발짝 더 뛰고 희생하는 원 팀 정신이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고 평가했다.

김대길 KBSN 해설위원은 “22세 이하 2명을 명단에 의무 포함시키는 한국프로축구연맹의 바뀐 규정으로 K리그 유스 선수들이 성장한 데다 대학·고교 선수까지 불러 테스트한 김 감독의 빈틈없는 준비와 용병술이 더해져 우승의 결과를 냈다”며 “김 감독의 23세팀, 정정용 감독의 20세팀, 김정수 감독의 17세팀까지 모두 국제대회 성적을 낼 정도로 선수층이 업그레이드돼 앞으로 한국 축구 전망은 밝다”고 분석했다.

이동환 기자 hu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