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한 폐렴’ 빠른 감염·잠복기 전파… 사스보다 위력 커지나

입력 2020-01-27 13:13 수정 2020-01-27 14:19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진원지인 중국 우한에서 구급차 운전기사가 고글과 마스크 등으로 중무장한 모습.EPA연합뉴스

중국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우한 폐렴) 환자가 급증하면서 2003년 전 세계적으로 774명의 사망자를 냈던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의 위력을 넘어서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발병지인 후베이성 우한에서 이미 500만 명이 춘제(春節·중국의 설)와 전염병을 이유로 빠져나가 중국 각지로 퍼진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잠복기에도 전염될 수 있는 등 전염성이 강하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국가위생건강위원회(위건위)는 27일 0시 현재 전국 30개 성과 홍콩·마카오·대만에서 2744명의 우한 폐렴 확진자가 나왔고 사망자는 80명에 달한다고 밝혔다. 이는 하루 전보다 확진자는 769명, 사망자는 24명 늘어난 것이다.

베이징에서는 9개월 영아가 우한 폐렴에 걸렸고, 새로 감염된 환자 5명 중 4명이 30∼40대로 확인됐다. 중국 내 의심 환자는 3806명 늘어난 5794명으로 집계됐고, 중증환자는 461명으로 크게 증가했다.

중화권 확진자는 홍콩에서 8명, 마카오에서 5명, 대만에서 4명으로 집계됐다. 미국에서도 추가 확진자 2명이 발생하는 등 해외에서도 확산세가 이어지고 있다. 현재 해외의 우한 폐렴 확진자는 태국 8명, 미국 5명, 일본·싱가포르·호주·말레이시아·한국 각각 4명 등이다.

특히 우한 폐렴 환자의 증가 속도가 너무 빨라 이대로 가면 2003년 37개국에서 8000여 명을 감염시키고 774명의 사망자를 낸 사스 사태를 넘어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우한 폐렴 확진 환자는 지난달 31일 27명에서 1월 11일 41명으로 완만한 증가세를 보이다 지난 19일 198명으로 급속히 늘어나며 폭증세를 보였다.
우한 폐렴 환자들을 수용하고 있는 진인탄 병원.

이어 23일 하루에만 확진자가 259명이나 늘어난 데 이어 24일에는 444명이 늘어나며 1118명으로 증가했다. 이후 25일에는 하루 동안 확진자가 688명이 늘어 총 1975명에 달했다.

이런 식의 증가세가 이어지면 곧 매일 1000명가량의 확진자가 나올 수 있고, 1주일 정도면 사스 사태 당시의 감염자 수를 돌파할 수도 있다.

증가속도도 사스 당시보다 빨라 보인다. 중국 정부는 2002년 11월 16일 광둥성 포산 지역에서 처음 감염자가 발생한 뒤 5개월만인 4월 10일에야 사스 발생을 공식 인정했다. 2월 초부터 매체들이 본격적으로 보도하기 시작했음에도 2개월간 쉬쉬하다 실토를 한 셈이다.

정부가 전염병 발병 사실을 은폐하는 사이 광둥성에서 베트남과 홍콩으로 퍼졌고, 이후 대만, 싱가포르, 캐나다, 미국 등으로 급속히 확산했다.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번지자 후진타오 주석이 직접 나서 ‘사스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본격 대응에 나섰다.

그렇게 허술하게 대응했던 사스 사태 당시 전 세계에서 8000여 명이 감염됐던 점을 감안하면, 현재 불과 1개월 여 만에 3000명 가까이 감염자가 발생한 ‘우한 폐렴’의 확산 속도가 더 가파른 것으로 보인다. 우한 폐렴으로 인한 사망자도 벌써 80명에 달했다.
중국 우한의 응급 요원들.AP연합뉴스

게다가 우한에서는 이미 500만 명이 빠져나간 것으로 확인돼 다른 지역 감염 확산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저우셴왕 우한 시장은 전날 저녁 기자회견에서 “춘제와 전염병 사태 때문에 현재 500여만 명이 우한을 떠났고 900만 명이 남아있다”고 밝혔다. 보균자가 있을지 모르는 500여만 명의 우한 시민들이 중국 각지와 세계로 떠났다는 의미다.

중국 제일재경망의 분석에 따르면 12월 30일∼1월 22일까지 우한에서 탑승해 해외로 떠난 항공기 승객은 태국이 2만558명으로 가장 많았고, 싱가포르 1만680명, 도쿄 9080명, 한국 6430명 순으로 조사됐다.

저우 시장은 “현재 2209명의 ‘우한 폐렴’ 의심 환자가 병원에서 치료 중”이라며 “이 가운데 45% 정도는 확진될 수 있어 1000명 정도 확진자가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마샤오웨이 중국 국가위생건강위원회 주임은 전날 기자회견에서 ‘우한 폐렴’의 전염 능력이 점점 강해지고 있으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사스와 달리 잠복기에도 전염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우한 폐렴 감염자가 이미 10만 명 이상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공중위생 전문가인 닐 퍼거슨 영국 임페리얼칼리지 교수는 “내가 아는 한 감염자는 현재 10만 명에 이를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그러나 “감염자 숫자가 ‘3만 명에서 20만 명 사이’일 수 있다”고 여지를 남기며 “수많은 사람이 감염됐다는 것은 확실하다”고 밝혔다.

바이러스학 분야 전문가로 지난 21∼22일 우한을 방문했던 관이 홍콩대학 신흥전염병국가중점실험실 주임은 중국 매체 인터뷰에서 “보수적으로 추산해도 우한 폐렴 감염 규모는 최종적으로 사스보다 10배는 클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미 통제 불능의 상황”이라며 “우한에 갔다가 극도의 무력감을 느끼고 다음 날 바로 돌아왔다. 두렵다”고 심경을 밝혔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