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경제·산업구조의 대대적 개혁 필요한 시점”
한국 경제가 ‘기초체력’(잠재성장률)만큼도 뛰지를 못하고 있다. 지난해 성장률 2.0%는 잠재성장률을 0.7% 포인트나 밑돌았다.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다만 성장률과 잠재성장률의 틈이 문제다. 2017년부터 불과 2년 만에 1.2% 포인트나 성장률이 떨어지면서 잠재성장률과의 격차는 점점 커지고 있다. 1990년대 장기 불황에 접어들었던 일본 경제와 닮은꼴 흐름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그나마 다행은 당시 일본과 달리 한국은 기업부채가 적다. 반전의 여지가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명확한 미래 목표를 제시한 독일이나 중국처럼 경제 구조개혁의 큰 그림을 서둘러 그려야 한다고 지적한다.
23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잠재성장률 추정치는 2.7%로 집계됐다. 잠재성장률은 국가의 생산요소(자본·자원·노동력 등)를 100% 발휘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잠재 국내총생산(GDP)의 증감률이다. 경제의 기초체력이 1년 사이 얼마나 바뀌었나를 가늠해볼 수 있는 지표이기도 하다.
OECD가 추산한 지난해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한국은행이 전날 발표한 경제성장률(2.0%)과 0.7% 포인트나 차이를 보인다. 민간 영역의 생산이 능력치보다 덜 가동됐다는 의미다. 최근 10년간 실제 경제성장률이 잠재성장률을 뛰어넘은 시기는 2010년과 2017년 두 번뿐일 정도로 ‘100% 능력’을 발휘하기는 어렵다. 관건은 두 성장률의 격차다. 지난해 기록한 0.7% 포인트라는 틈새는 2012년(1.4% 포인트) 이후 가장 넓다.
‘GDP 갭(Gap)’이라고도 불리는 이 간극이 크면 클수록 경제에는 ‘나쁜 신호’다. 생산의 원동력이 되는 국내외 수요가 지나치게 줄어들었다는 시그널이기 때문이다. 수요 감소는 연쇄반응을 부른다. 기업은 수요 감소 흐름을 감지하고 투자를 기피하게 된다. 실제 지난해 기업의 설비투자는 전년 대비 8.1%나 감소했다. 투자가 줄어들수록 생산은 둔화하고 일자리가 감소한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가 작동하면서 경제의 체력은 떨어지게 된다.
길고 긴 불황을 겪었던 일본도 ‘터널’의 초입에서 비슷한 상황을 겪었었다. 당시 일본은 GDP 갭 확대, 민간소비 침체에 시달렸다. 하락하는 경기를 부양하려는 정부소비만 두드러지게 늘었다. 1992년부터 2002년까지 일본의 정부소비는 연평균 2.2% 증가했다.
한국에는 아직 시간은 있다. 한국의 실제 성장률은 2013~2018년 2.7~3.2%를 오가며 안정적 추세를 보였다. 당시의 GDP 갭은 0.5% 포인트 이상 벌어지지 않았다. 최소한 아직은 ‘특수한 상황’인 셈이다.
전문가들은 초기에 강력하게 경제 체질을 바꿔야 한다고 주문한다. 기업부채 비율이 400%에 달했던 당시 일본과 달리 한국 기업은 부채 비율이 낮아 투자 여력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에 정부가 혁신성장 정책 자체를 정밀진단하고, 명확한 목표를 제시해야 한다. 김현욱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마중물을 계속 부어도 물이 나오지 않을 가능성을 고려하고 점검해야 한다”며 “진단 후에는 중국의 ‘제조 2025’나 독일의 ‘인더스트리 4.0’처럼 구체적인 지향점을 제시하고 실행할 때”라고 강조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