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인사, 윤석열식 파격 사라지고 과거 검찰로 회귀했다

입력 2020-01-23 15:01

법무부가 다음 달 3일자로 단행한 검찰 고검검사(차장·부장검사)급 인사의 큰 특징은 ‘역진(逆進)’ 현상이다. 서울중앙지검장을 보좌하는 차장검사 4명은 모두 후임자가 사법연수원 1~2기수 선배들로 채워졌다. 차장급 검사가 서울중앙지검의 반부패수사부장으로 전보된 것도 이례적이다.

법무부가 밝힌 역진 인사의 선택 배경은 검찰 조직의 안정이다. 검찰 구성원들은 “지난해 7월 윤석열 검찰총장이 주도했던 파격이 사라지고, 과거의 모습으로 돌아갔다”고 말했다.

하지만 내용을 뜯어보면 이른바 ‘윤석열 사단’의 좌천과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라인’의 발탁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살아 있는 권력’을 수사한 차장검사들을 부치지청(부장검사는 있고 차장검사는 없는 지청)으로 보낸 것은 노골적이지만, 그간 능력에 비해 ‘음지’에 있던 검사들을 주요 보직으로 끌어올린 측면도 있다는 것이 법조계의 평가다. 검찰 구성원들은 “의도를 달성하면서도, 검찰 내에 불만과 환영이 공존토록 인사안이 짜여졌다”고 했다.

23일 법무부가 공개한 검찰 고검검사급 인사안에 따르면 사법연수원 28~29기로 구성됐던 서울중앙지검 차장검사들은 이번 인사에서 27~28기들로 교체됐다. 법조계 관계자는 “이번 인사의 중심이자 기준은 사법연수원 29기”라며 “애초 서울중앙지검 부장검사를 마치고 지청장으로 나가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지난해 인사에서 그게 뒤집혔었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29기들 틈에 4~5단계의 차이가 있었다면, 이번엔 그 격차가 1~2단계로 줄어든 모습”이라고 해석했다.

지난해 7월 서울중앙지검 부장검사에서 차장검사로 직행했던 이들이 중간에 생략했던 코스를 이번에 밟게 됐다는 해석이다. 내용은 좌천이지만 형식적 명분은 있었다는 얘기다. 차장검사 출신 변호사는 “의도는 보이지만, 표면적으로는 ‘인사가 잘못됐다’는 소리는 못하게 만든 것”이라고 평가했다. 윤 총장 취임 직후 다소 서운한 인사안을 받아들었을 중간간부들이 이번에 요직에 발탁됐다는 말도 돌았다.


역진 인사 속에서 눈길을 끈 대목은 ‘수사 1번지’ 서울중앙지검의 반부패수사1부장이다. 이 자리에는 김형근(51·29기) 성남지청 차장검사가 기용됐다. 일선청 특수부장과 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 수사지휘과장을 거친 그는 ‘특수통’으로 분류되는데, 차장검사의 반부패수사부장 역할 수행은 이례적이다. 그가 대검 수사지휘과장일 때 반부패부장은 이 지검장이었다.

서울중앙지검의 신임 차장검사들은 과거 대검이 ‘우수 형사부장’으로 선정했던 이들로 구성됐다. 법무부는 형사부 경력을 우대하겠다고 강조해 왔다. 이정현(52·27기) 신임 1차장과 신성식(55·27기) 신임 3차장은 2017년 상반기에, 김욱준(48·28기) 신임 4차장은 2017년 하반기에 각각 민생범죄 수사의 성과를 인정받아 ‘우수 형사부장’으로 선정됐다.

인사를 앞두고 몰락이 예견되던 특수통들은 명맥을 유지했다. 공안통들은 여전히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다고 검찰 관계자들은 입을 모았다. 선거·노동 사건 등 주요 공공수사를 지휘하는 서울중앙지검 2차장에는 특수통으로 분류되는 이근수 방위사업청 방위사업감독관이 기용됐다. 공안통의 자리에 특수통을 두는 기조는 유지된 셈이다.

검찰 내 성추행 폭로로 ‘미투 운동’을 촉발했던 서지현 성남지청 부부장검사(47·33기)는 법무부로 옮겨 조직문화 개선 및 양성평등 업무를 맡게 됐다.

허경구 구자창 기자 ni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