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 넘은 ‘우한 폐렴’, “팬데믹에 가까워졌다”

입력 2020-01-22 13:18 수정 2020-01-22 17:57
'우한 폐렴'을 일으키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유증상자가 5명으로 늘어난 22일 인천공항 제1여객터미널 입국장에서 베이징에서 내린 승객들이 마스크를 쓴 채 공항을 빠져나가고 있다.인천공항 = 최현규기자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2019-nCoV, 우한 폐렴)이 태국과 일본, 한국 등 아시아 국가를 넘어 태평양 건너 미국에까지 번졌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21일(현지시간) 우한 여행을 다녀온 워싱턴주 시애틀 인근 지역 거주 30대 남성을 미국 내 첫 ‘우한 폐렴’ 감염자로 공식 인정했다. 서구권도 바이러스 확산의 가시권에 들어간 셈이다.

이처럼 중국 내 감염과 인접 국가 전파 단계에서 대륙 간 전파 단계로까지 확산 수위가 높아지면서 세계적 대유행을 의미하는 ‘팬데믹(Pandemic)’에 가까워졌다는 국내 전문가의 의견이 나왔다.

전 대한감염학회 이사장인 김우주 고려대 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

전 대한감염학회 이사장인 김우주(사진) 고려대 구로병원 교수는 22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감염원과 감염 경로, 전파 속도 등에 대한 확실한 정보가 없어 2009년 신종플루(신종 인플루엔자바이러스) 대유행 시 따랐던 기준을 그대로 적용하긴 조심스러운 측면이 있다”면서도 “신종 감염병 확산 3단계(국내→국가간→대륙간 전파)로 봤을 때 이미 미국에서까지 환자가 발생한 우한 폐렴은 이제 팬데믹에 가까워졌다고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2009년 발생한 신종플루는 214개국 이상에서 감염자가 나왔고 전 세계적으로 1만8500명의 사망자를 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와 유전자가 77% 비슷한 거로 밝혀진 사스는 2002~2003년 전 세계 37개국에서 8000여명을 감염시켰고 774명이 사망했다.

김 교수는 “아메리카대륙이 뚫렸으니 유럽 등 다른 대륙에서 신종 코로나감염자 발생은 시간 문제”라고 했다.

이처럼 대유행 위기감이 고조되자 세계보건기구(WHO)는 이날 긴급회의를 열고 초국가적 전염병 사태에 적용하는 ‘국제공중보건위기상황(PHEIC)’을 선포할지를 결정한다. 긴급 조치가 결정될 경우 여행·무역 제한 권고도 이뤄져 경제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PHEIC는 2009년 신종플루, 2014년 야생형 폴리오 및 서아프리카 에볼라, 2015년 지카바이러스감염증, 2018년 키부 에볼라 등 총 5차례 선포된 적 있다.

김 교수는 “국제공중보건 비상사태가 선포되면 질병 예방·감시, 제어 대책에 대한 국가 간 공조가 강화된다. 이런 조치들이 강제력은 없으나 지금까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의 정보 공개에 소극적이었던 중국 정부가 상당한 압박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의 전 세계적 확산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내국인의 추가 감염을 막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앞으로 국내에서도 산발적 확진 환자가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우한에서 오는 중국인이나 내국인뿐 아니라 중국을 다녀오지 않은 우리 국민들이 감염되지 않도록 검역뿐 아니라 지역사회 의료기관의 감시와 대응이 매우 중요하다”고 했다. 특히 고열이나 기침 등의 증상이 없는 잠복기에 공항 검역을 통과한 사람들의 관리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이른바 ‘슈퍼 전파자(super spreader)’ 차단에도 주력해야 한다. 중국 우한에선 1명의 감염자가 14명의 의료진을 감염시켜 슈퍼 전파자로 인한 감염 확산 공포가 커지고 있다. 슈퍼 전파자는 1명의 확진자가 4명 이상의 2차 감염자를 발생시키는 경우를 말한다. 2015년 국내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 때도 1명의 감염자가 4개 병원을 전전하며 1000명 넘는 밀접 접촉자를 발생시켰고 다수의 사망자가 나온 바 있다.

김 교수는 “슈퍼 전파자의 경우 기침, 재채기를 통해 더 많은 바이러스를 내뿜는데, 의료진이 밀폐된 공간에서 보호장구 없이 접근하다간 무방비로 감염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은 현재 치료제와 예방백신이 개발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 본인의 면역시스템으로 바이러스를 이겨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면역력이 약한 60세 이상 고령이거나 당뇨병·암 등 만성질환자, 면역억제약 사용자 등은 감염되면 사망할 확률이 높아진다. 지금까지 ‘우한 폐렴’으로 인한 중국인 사망자 9명도 대부분 고령이거나 만성질환자들이었다.

김 교수는 “면역 저하자는 특히 고열이나 기침 증상을 보이는 이들 곁에는 가지 말고 마스크 착용 같은 예방수칙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 아울러 하루빨리 백신 개발도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