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사 주주·기관투자가 힘 세진다

입력 2020-01-21 17:54

앞으로 국민연금을 비롯한 기관투자가의 ‘입김’이 한층 세진다. ‘5%룰’이라 불리는 공시의무가 완화되면서 기관투자가가 경영에 개입하는 ‘주주권’이 강화된다. 오는 3월 주요 기업의 주주총회에서부터 영향력을 발휘할 것으로 보인다. 주주총회에서 일반 주주의 의결권도 강해진다. 재계에서는 과도한 경영 간섭으로 기업경영의 자율성을 훼손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정부는 21일 국무회의를 열고 상법·자본시장법·국민연금법 시행령 개정안을 의결했다. 핵심은 기관투자가와 일반 주주의 주주권 행사 강화다. 대통령 재가를 거쳐 상법·국민연급법 시행령은 공포 후 즉시, 자본시장법 시행령은 다음 달 1일부터 시행된다.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안은 ‘5%룰’이라고 불리는 공시의무를 완화했다.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가 의결권 행사 지침) 도입 후 기관투자가의 주주 활동이 활발해지는 추세를 반영한 것이다. 5%룰이란 기관투자가가 상장사 주식 등을 5% 이상 보유하거나 이후 1% 이상 지분 변동이 있는 경우, 5일 이내에 보유 목적과 변동 사항을 보고·공시하도록 한 규정이다.

개정안은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정관 변경 추진, 회사 임원의 위법행위에 대한 해임청구권, 배당과 관련한 주주활동 등을 경영 참여가 아니라고 판단해 5%룰 적용 대상에서 제외했다. 기관투자가의 지분 취득이 경영권과 무관한 경우에도 보유 목적을 일반투자와 단순투자로 세분화해 보고·공시의무를 차등화했다.

상법 시행령 개정안은 주주총회 소집 통지 시 사업보고서와 감사보고서를 함께 제공하도록 한다. 주주가 총회 개최 전에 회사 성과 정보 등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다. 전자투표 본인인증 수단도 휴대전화와 신용카드 인증 등으로 다양해진다. 이사나 감사 등 임원 선임을 위한 주주총회 소집 시 후보자의 체납사실, 부실기업 임원 재직 여부, 법령상 결격사유 등을 함께 공고하도록 했다. 일반 주주의 주주권을 강화하는 것이다.

사외이사의 독립성도 확보된다. 한 회사에서 6년, 계열사를 포함해 9년을 초과해 사외이사로 근무할 수 없도록 했다. 특정회사 계열사에서 퇴직한 지 3년이 되지 않으면 해당 회사의 사외이사가 될 수 없다. 그동안 상장사의 사외이사 결격 기간은 2년이었다.

재계는 강한 불만을 제기한다. 배상근 전국경제인연합회 전무는 “연기금 등 기관투자가가 경영참여 선언 없이 정관변경 요구, 임원의 해임청구 등을 할 수 있게 되면 기업에 대한 정부 간섭을 증가시킨다. 기업 경영의 자율성을 저해할 우려가 크다”고 비판했다.

박재찬 최예슬 기자 jeep@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