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영상 시청 안한 고객에게도 한 달 치 요금 환불 거부
“법에 보장된 고객 권리 배제는 약관법 위배”
공정위, 구독경제 전반 약관 검토 방침
공정거래위원회가 국내외 온라인 동영상서비스 사업자(OTT)의 불공정약관을 겨누고 있다. 최근 ‘OTT 공룡’ 넷플릭스의 불공정약관 시정을 이끈 데 이어 국내 IPTV(인터넷TV) 주요 사업자들의 ‘1개월 이내 해지 시 환불 불가’ 약관을 없앴다. 공정위는 OTT 시장뿐 아니라 ‘구독경제’(일정액을 내면 원하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주기적으로 공급하는 유통 서비스) 전반의 환불 약관까지 들여다본다는 방침이다.
공정위는 ‘월정액 주문형비디오(VOD) 부가서비스’를 이용한 고객이 동영상을 시청하지 않았는데도 1개월 이내 해지 시 요금을 환불해주지 않은 국내 인터넷TV 사업자 3곳(KT, SK브로드밴드, LG유플러스)의 약관을 시정했다고 21일 밝혔다. 3개 인터넷TV 업체의 약관에는 ‘본상품 구매 후 30일 이내 해지 시 1개월 요금이 청구된다’는 항목이 있다. 동영상 시청 여부와 관계없이 한 달치 요금을 환불하지 않는 것이다.
공정위는 이런 약관이 ‘방문 판매 등에 관한 법률’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전자상거래법)’ 위반이라고 판단했다. 방문 판매 등에 관한 법률 32조에는 ‘사업자가 계약 해지로 인한 과도한 위약금을 청구하면 안 되며, 실제 공급된 재화에 대한 대가를 초과해 받은 대금의 환불을 거부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이 법규를 인터넷TV 사례에 적용하면 한 달치 이용요금을 낸 소비자가 동영상을 시청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인터넷TV 사업자가 환불을 거부하면 안 된다.
전자상거래법 17조에도 ‘인터넷TV 사업자와 같은 통신판매업자는 디지털콘텐츠의 제공이 개시되지 않은 경우 계약서를 받은 날로부터 7일 이내에 청약철회를 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다. 인터넷TV 업체들은 소비자의 청약철회 권리를 인정하지 않았다.
공정위 관계자는 “법률에 따른 고객의 권리를 타당한 이유 없이 배제하거나 제한하는 조항은 약관법에 위반되기 때문에 무효”라고 강조했다. 다만 공정위는 고객이 단기간에 집중적으로 시청한 뒤 서비스를 해지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감안해 단 한 번이라도 동영상 시청 이력이 있는 경우 1개월치 요금 청구가 부당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3개 인터넷TV 사업자는 공정위 지적을 받은 약관들을 자진 시정해 올해부터 새 약관을 적용하고 있다. 개정 약관에는 ‘가입 후 1개월 내 해지를 원하는 고객은 동영상을 시청하지 않았다는 전제 하에 7일 이내 청약철회를 해 전액 환불받을 수 있다’고 명시됐다. 가입 7일 이후 해지 시에는 가입기간 만큼의 요금과 잔여기간 요금의 10%를 위약금으로 공제하고 환불받을 수 있다.
시장에서는 공정위가 OTT 산업을 대상으로 ‘불공정 행위 고치기’에 들어갔다고 본다. 연초부터 공정위가 OTT 분야 불공정약관 시정에 드라이브를 건 것은 OTT 시장의 급성장과도 관련이 깊다. 지난해 상반기 인터넷TV 가입자 수는 1600만명을 돌파했고, 전체 유료방송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8.58%에 이르렀다. 넷플릭스 이용자 수도 200만명을 넘어섰다. ‘디즈니 플러스’ 등 글로벌 OTT가 조만간 한국시장 진출을 예고하면서 국내 OTT 시장이 지각변동을 겪을 가능성도 크다.
세종=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