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으로 금지된 장기기증인과 이식인 처음 만났다

입력 2020-01-20 17:17 수정 2020-01-20 17:36
고 김유나양에게 감사 편지를 낭독하고 있는 미국인 이식인 킴벌리(가운데)와 이를 듣고 있는 김양의 어머니 이선경씨(오른쪽)(사진=장기기증운동본부 제공)

국내법이 금지하고 있는 장기기증인 유가족과 이식인 간의 만남이 국내에서 처음 성사됐다. 이들은 “기증인과 이식인의 교류는 장기기증 활성화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며 서신 교류라도 허용해달라고 촉구했다.

사연의 주인공은 지난 2016년 미국 유학 중 불의의 교통사고로 뇌사상태에 빠진 고 김유나(사망 당시 18세)양이다.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주최로 20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김양의 장기를 이식받은 미국인 킴벌리 앰버(24)씨는 김양 4주기를 맞아 김양의 부모 김제박(53)·이선경(48)씨를 만났다.

2살 때부터 소아당뇨로 오랜 기간 투병생활을 하던 앰버씨는 18살 때 당뇨합병증으로 신장이 모두 망가져 혈액투석기에 의지해 하루하루를 연명했다. 이틀에 한번 9시간씩 혈액투석 치료를 받으며 힘겨운 시간을 보내던 중 앰버씨는 김양의 신장과 췌장을 이식받았다. 건강을 회복해 결혼까지 했다는 앰버씨는 “유나는 나에게 신장과 췌장만 준 게 아니라 새로운 인생을 선물해줬다”고 말했다.

고 김유나양의 장기를 이식받은 미국인 이식인 킴벌리와 김양의 어머니 이선경씨가 20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서로를 끌어안고 있다.(사진=장기기증운동본부 제공)

김양의 장기기증으로 미국인 6명이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 김양의 부모는 앰버씨뿐 아니라 김양이 살린 이식인들로부터 감사편지를 여러 통 받았다고 했다. 김양 어머니 이선경씨는 이날 앰버씨와 만나 “이식인들이 건강하게 살고 있다는 소식은 우리 가족에게 큰 위안이 됐다”며 “장기이식을 받은 데 대해 미안한 마음을 갖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김양 부모와 앰버씨의 만남을 눈물을 훔치며 보는 이들이 있었다. 국내 뇌사 장기기증인 유가족들이다. 미국에선 장기기증인과 유가족의 만남을 허용하고 있지만, 국내에선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 31조에 따라 수사나 재판 등 예외적 경우를 제외하고는 양측의 정보 교류가 금지된다. 장기기증과 관련한 금전거래 등의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다만 김양은 미국 기관을 통해 장기기증이 이뤄진 터라 이식인을 만날 수 있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뇌사 장기기증인 유가족 모임 ‘도너패밀리’는 “국내에서 장기기증을 실천한 5600여명의 뇌사 장기기증인 유가족은 같은 나라에 살고 있는 이식인이 건강하게 지내는지조차 알 수 없다”며 “국내에서도 유가족과 이식인 간 서신 교류를 허용해달라”고 요구했다. 신장·췌장 이식인 모임의 송범식 회장도 “기증인 유가족과의 교류는 이식인이 더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동기부여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장기기증 활성화를 위해서라도 기증인과 이식인 간 교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장기기증운동본부에 따르면 뇌사 장기기증인은 2016년 573명에서 2017년 515명, 2018년 449명, 2019년 450명으로 감소 추세다. 반면 이식을 기다리는 환자는 2016년 2만4600여명에서 2019년 3만2000여명으로 늘었다. 본부 관계자는 “실제 장기를 기증한 이들의 유가족이 장기기증을 추천하고 홍보함으로써 기증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영선 기자 ys8584@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