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모들 조언이 항상 맞지 않아”…집권 3년 넘으며 자신감
예스맨들만 남은 상황에서 솔레이마니 제거 작전 결정
독일·프랑스·영국에도 이란 문제로 “자동차 관세 부과” 위협
“트럼프, 동맹을 보호 원하는 마피아 파트너처럼 대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로 임기 4년차를 시작한다. 오는 11월 3일 미국 대통령에서 승리한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앞으로 5년 더 백악관에서 지낼 수 있다. 하지만 패배할 경우 남은 임기는 1년뿐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지난 3년 임기 중 가장 비판적인 평가를 받는 분야는 외교정책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 대통령의 강압적(strong-arm) 외교정책이 미국의 적들은 물론 동맹들과도 긴장을 일으키고 있다”고 1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과격주의 접근(maximalist approach)’은 트럼프 행정부 외교정책의 특징으로 자리 잡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단기적으로는 승리를 거두기도 했고, 비판론자들로부터는 ‘강탈’이라는 비난도 받았다.
눈앞에 이익만 쫓는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정책은 탄핵 사태를 몰고 오면서 자신을 올가미에 빠뜨리기도 했다. 우크라이나 정부에 조 바이든 전 부통령 부자의 뒷조사를 종용하면서 미국의 군사원조를 연계했다는 ‘우크라이나 스캔들’을 자초했기 때문이다.
4년 차를 맞는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정책과 관련해 미국 내에서는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리더십을 잃게 만들고 미국을 고립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어른들의 축’은 떠나고 ‘예스맨’들만 남아
트럼프 대통령 임기 초반에는 ‘어른들의 축(Axis of adults)’으로 불렸던 3인방이 있었다.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 존 켈리 백악관 비서실장이 그들이다. 경험이 많은 이들은 즉흥적이고 충동적인 트럼프 대통령의 성향을 제어하면서 미국 정부에 안정감을 불어넣는 균형추 역할을 했다.
하지만 ‘어른들의 축’은 모두 떠나고 그 빈자리가 예스맨들로만 채워졌다. 예스맨들은 전임자들보다 전문성보다 크게 떨어진다는 것이 WP의 판단이다.
WP는 지난 13일 기사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예스맨들이 내린 대표적인 결정으로 이란 군부지도자 가셈 솔레이마니 제거 작전을 꼽았다. 최소한 매티스 전 국방장관이라도 남아 있었다면 솔레이마니 제거 작전은 실행되지 못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4년 차 대통령이 된 트럼프 대통령의 자신감도 빼놓을 수 없는 요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역사상 공직을 한 번도 경험하지 않은 최초의 대통령이다. 부동산 업자와 TV쇼 진행자로 인기를 다진 뒤 대통령 자리를 차지한 인물이다.
WP는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3년을 지내면서 자신감이 크게 강화됐다”면서 “특히 그는 중동 문제 대해선 끔찍한 결과가 발생할 것이라는 참모들의 전망이 항상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분석했다.
대표적 예가 주이스라엘 미국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이전한 것이다.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는 “지옥의 문을 연 결정”이라고 경고했으나 미국에 대한 공격은 발생하지 않았다. 이런 사례들을 통해 참모들의 조언을 묵살해도 된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생각이 강해졌다는 것이다.
크리스 머피 민주당 상원의원은 “매티스 전 국방장관은 이란에 대해 매파였지만 그는 트럼프 행정부에서 냉철했던 사람들 중 하나였다”면서 “그러나 현재 트럼프 외교안보팀에서 제대로 된 외교경험을 갖춘 인사는 드물다”고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을 감싸고 있는 예스맨들이 트럼프 대통령의 직감을 제어하는데 소극적인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독일·프랑스·영국에도 “이란 문제 협조 않으면 자동차 관세 부과” 위협
WP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독일이 여러 전선에서 중심 타깃으로 부상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독일이 주독미군 비용을 제대로 내지 않고 있으며 미국 소비자들과 기업들에게 불리한 경제정책으로 미국의 단물만 빨아먹는다고 주장하는 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1일 스위스 다보스에서 공식 개막하는 세계경제포럼(WEF) 연차 총회, 일명 다보스 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20일 출국한다. 트럼프 대통령과 다보스 포럼에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를 만나 어떤 얘기를 나눌지가 벌써부터 관심사다.
특히 미국은 독일·프랑스·영국 정부에 미국의 이란 정책에 협조하지 않을 경우 유럽산 자동차에 2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은밀히 위협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 서명국인 독일·프랑스·영국이 이란이 합의사항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분쟁조정 절차에 착수하지 않으면 미국이 자동차 관세를 부과했다고 협박했다는 것이다.
세 나라 외무장관들은 14일(현지시간) 공동성명을 내고 분쟁절차 착수를 선언했다. 하지만 이번 협박은 오히려 트럼프 대통령이 원하지 않았던 결과로 이어질 뻔했다고 WP는 지적했다. 독일·프랑스·영국도 미국의 위협 이전에 이미 분쟁절차 착수를 검토하고 있었는데, ‘워싱턴의 애완견’으로 비쳐질까봐 기존 결정을 뒤엎는 방안을 논의했다는 것이다.
제레미 샤피로 유럽외교협회 조사국장은 “이번 사건은 트럼프 대통령이 동맹과의 외교술을 상실했음을 보여주고 있다”면서 “가까운 동맹의 본질은 위협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해법을 찾기 위해 동시에 힘을 모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동맹을 보호 원하는 마피아 파트너처럼 대해”
WP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이 지난 16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한국은 ‘부양 대상(defendent)’이 아닌 동맹’이라는 제목으로 실은 공동 기고문도 문제 삼았다. 두 장관은 미국의 유력 일간지를 통해 한국의 방위비 증액을 촉구하고 나섰다.
WP는 “이 기고문은 한국이 동맹보다 부양 대상처럼 행동하는 것으로 암시해 한국에서 불만이 제기됐다”면서 “이런 대화는 전국적인 신문을 통해 알리기보다 비공개로 막후에서 나눌 전형적인 대화”라고 꼬집었다.
해리 카지아니스 미 국익연구소 한국 담당국장은 WP에 “트럼프 대통령은 우선 미국이 왜 동맹을 가져야 하는지를 이해하지 못한다”면서 “그는 동맹들을 마치 자신들을 보호해달라며 미국에 아부해야 하는 마피아 파트너처럼 대한다”고 비판했다.
WP는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미군 주둔 비용 전부에다 50%를 추가로 부담시켜 수십억 달러(수 조원)를 더 받아내려고 시도한 것도 동맹국들을 괴롭혔다고 전했다.
이런 방침이 미군 3만 3000명 이상이 주둔하고 있는 독일을 비롯한 유럽 당국자들을 불안하게 만들면서 반발이 일었다. 이에 대해 미 국방 당국자들은 “이 방침은 한국과 일본 등 아시아의 미국 동맹들과 관련이 있는 것”이라며 “비록 한국이 과거엔 분담금보다 미국에 더 많이 지불하긴 했지만 한국과 일본 모두 이런 수준의 비용을 충족시키지 못했다”고 말했다.
미국에 있는 한 주요국 대사는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정책은 그가 뉴욕 부동산 업자로 활동했을 때의 결과물”이라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항상 무언가를 더 원한다”고 말했다. WP는 비판론자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정책에는 장기적인 관점의 전략적 인식이 결여돼 있다고 지적한다고 전했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