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정신장애를 가진 친아들을 ‘코피노’(한국계 필리핀 혼혈아)로 속여 해외에 유기한 사건에서 피해자를 변호하고 있는 국선변호사의 국민청원이 등장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17일 ‘필리핀에 유기되었던 아동학대 사건의 피해 아동을 도와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원이 게시됐다. 부모의 유기 대상이었던 A군(16)의 국선변호사라고 자신을 소개한 B씨는 “A군을 보호해 줄 곳을 찾기 위해 글을 올린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이 사건은 부산지방법원에서 1심 판결 선고 후 피고인들이 법정구속된 상태”라며 “A군은 필리핀에서 인천공항으로 입국한 후 부산으로 내려와 현재는 양산의 한 정신과병원에 입원 중”이라고 밝혔다.
이어 “A군이 처음 부산에 도착했을 때 저희는 A군을 학대피해쉼터에 입소시켰지만, A군이 자폐와 정신질환으로 의심되는 이상행동을 계속해 급히 해운대의 한 정신과병원에 입원시켰다”며 “그러나 그곳에서도 상태가 전혀 호전되지 않아 양산의 병원으로 전원을 했고 지금까지 입원 중”이라고 설명했다.
B변호사는 “저와 부산동부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는 A군을 계속해 정신과병원에 입원시키는 것은 A군의 발달과 복리를 위해 좋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A군이 학교 교육을 받기를 원한다. 적절한 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지폐와 지적장애, 정신질환을 모두 앓고 있지만 어떠한 형태로든 교육을 받게 된다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천천히 호전될 것”이라며 “그러기 위해서는 A군이 입소할 수 있는 보육시설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어 “하지만 현재 부산에는 A군이 적절한 곳이 없고 전담 선생님도 필요한 상태”라며 “A군 역시 정신과병원이 아닌 보육시설에서 지내기를 원하고 있다”고 도움을 요청했다. 이 청원은 같은 날 오후 11시 기준 348명이 동의했다.
앞서 아동유기·방임 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A군의 부모는 지난 9일 부산지법 형사 4단독 부동식 판사 심리로 열린 1심 재판에서 각각 징역 2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이들은 2014년 11월부터 2018년 12월까지 약 4년 동안 당시 10살이던 A군을 필리핀, 네팔 등 해외에 유기한 혐의를 받는다. 친부 C씨는 아들을 처음 유기할 당시 필리핀의 한 선교사에게 A군을 코피노라고 소개하며 “편부가 경제적 어려움으로 키울 수 없으니 돌봐달라”는 취지의 부탁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아이가 질병에 걸리거나 사망하더라도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각서도 썼다. 이후 부부는 괌과 태국 등을 여행한 뒤 한국에 돌아왔고, 전화번호를 바꾸고 이메일 아이디를 삭제하는 등 연락 차단을 시도했다.
C씨 부부가 A군 유기를 시도한 정황은 그전에도 있었다. 2011년 3월 취학연령이던 A군을 경남 마산의 한 어린이집에 맡겼고, 2012년에는 충북 괴산의 한 사찰에서 1년을 보내게 했다. 부부는 이때도 자신들의 이름과 주소 등을 알려주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A군을 네팔에 데리고 가 한 차례 유기하기도 했는데, 당시 A군은 현지인의 도움으로 혼자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돌아왔다. 만 6세가 채 되지 않은 나이였다.
비정한 부모의 이같은 상습 유기 행위는 A군을 맡았던 필리핀 선교사의 동료가 국민신문고에 ‘필리핀에 버려진 한국아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며 드러났다.
원래 가벼운 자폐증세만을 보였던 A군은 수년간 이곳저곳을 전전하며 중증의 정신분열을 겪을 정도로 건강이 악화된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중증도의 정신지체 판정을 받았고 왼쪽 눈도 실명된 상태다.
문지연 기자 jym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