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균법 첫날 맞았지만…“김용균씨 살아있다면 다시 하청노동자된다”

입력 2020-01-16 17:44 수정 2020-01-16 21:41

“‘김용균법’이 2018년에 국회를 통과할 때만 해도 일말의 기대가 있었지만 후속 입법 과정에서 걸레가 돼버렸죠. 법 시행 첫날인데 김용균씨가 몸담던 화력발전소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네요”

충남의 한 화력발전소에서 근무하는 A씨는 16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무기력함을 내뱉었다.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던 김씨가 컨베이어 벨트에 끼는 사고로 세상을 떠난 후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김용균법)이 도입됐지만 현장 노동자들에게 달라진 건 없었다. 잠시 추위를 피할 컨테이너나 작업 때 착용할 방진마스크 하나 마련해달라고 해도 원청업체는 여건이 어렵다며 난색을 표했다. A씨는 “이제는 누구도 김용균법을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했다.

위험의 외주화를 막기 위한 김용균법 시행 첫날인 16일 노동 현장에서는 법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원청 사업주의 책임이 일부 강화됐지만 산업재해를 막기엔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반면 경영계는 규제가 대폭 늘어났고 조항이 불분명하다며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김용균법은 도급금지 범위가 협소해 ‘김용균 없는 김용균법’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김용균법은 도금작업과 수은·납·카드뮴 가공, 유해·위험물질 제조·사용 작업 등에만 도급금지를 명시했다. 김씨가 사고를 당한 전기사업설비 점검 같은 위험작업은 여전히 하청업체 일이다. 김용균재단은 이날 “김용균이 살아있었다면 다시 같은 사고를 당할 수 있는 하청노동자로 일해야 한다”고 했다.

하청노동자가 심각하게 다칠 수 있는 위험 상황에서 작업 전면 중지 요건이 더 까다로워졌다는 점도 지적됐다. 이태성 민주노총 발전비정규직연대회의 간사는 “본래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으면 작업의 전면 중지가 원칙이었지만, 기업 부담을 이유로 해당 작업이나 동일 작업만 중지하는 것으로 개악됐다”고 말했다.

물론 김용균법 도입으로 원청 사업주의 책임은 일정부분 강화됐다. 안전보건조치 책임 범위를 기존 사업장 내 22개 위험 장소에서 사업장 전체로 확대하고 안전조치를 위반한 사업주에 대한 형사처벌을 강화했다. 하청노동자가 산재 사고로 숨지면 사업주는 7년 이하 징역이나 1억원 이하 벌금형을 받게 된다. 하지만 노동계는 원청이 하청에 위험과 책임을 떠넘기는 구조 자체는 바뀌지 않아 실질적인 변화는 미미할 것이라 보고 있다.

사용자들은 불명확한 규정을 근거로 원청 사업주에게 지나친 부담을 지운다고 우려한다. 김용근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은 “중대사고가 발생했을 때 사업주에게 내리는 작업 중지 등 벌칙이 워낙 강하다”며 “한번 공장을 멈추면 회복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고 억대 손실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김 부회장은 “김용균법이 규정하는 벌칙의 절차와 요건이 보다 명확해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조원 한국경제연구원 고용창출팀장은 “하청업체 혹은 현장에서 안전 관리가 안 돼 사고가 발생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며 “이런 경우까지 모두 원청에 책임을 지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방극렬 황윤태 기자 extre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