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는 가끔 위험할 정도로 무식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앙숙인 워싱턴포스트(WP)의 소속 기자 2명이 트럼프 대통령의 지적 수준을 조롱하는 책을 펴냈다. WP는 15일(현지시간) 필립 러커, 캐럴 D. 르닉 기자가 전직 백악관 참모 등 200여명의 인터뷰 내용을 토대로 쓴 417쪽 분량의 ‘매우 안정된 천재(A Very Stable Genius)’를 펴냈다고 전했다.
책 제목인 ‘매우 안정된 천재’는 트럼프 대통령이 2018년 1월 정신건강 논란에 대해 반박하며 자신을 묘사한 말이다. 트럼프 대통령을 무식한 지도자로 평가한 저자들이 반어적으로 제목을 달았다. 저자들은 “자기중심적이고 논리적이지 못한 인물이 어떻게 의사결정을 주도했는지 드러내기 위한 의도로 책을 냈다”고 서문에 밝혔다. 저자 중 러커는 지난 2018년 트럼프와 러시아의 관계를 폭로해 퓰리처상을 수상한 바 있다.
책의 내용을 미리 보도한 WP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 만났을 때 “(인도가) 중국과 국경을 접한 것도 아닌데요”라고 말하며 인도에 대한 중국의 위협을 대수롭지 않은 것처럼 얘기했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국경을 맞댄 두 나라가 오랫동안 분쟁을 겪은 사실을 까맣게 몰랐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인도와 중국은 1962년 히말라야 일대 국경을 놓고 전쟁까지 치렀으며, 2017년에는 중국, 인도, 부탄의 국경이 만나는 도카라(중국명 둥랑<洞朗>·부탄명 도클람) 지역에서 73일간 군사 대치를 벌이기도 했다. 저자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국경 발언에 “모디 총리가 놀라서 눈이 툭 튀어나올 정도였다”면서 “모디 총리의 표정은 충격과 걱정에서 체념으로 점점 변했다”고 말했다.
저자들은 또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하와이 진주만의 ‘애리조나 기념관’을 방문했을 때의 사례도 소개했다. 애리조나 기념관은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공습으로 침몰한 미군 함정 애리조나호 위에 세워진 추도시설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방문 당시 존 켈리 비서실장에게 “어이 존, 이 모든 게 뭐야, 이번 투어는 뭐지?”라고 물었다고 한다. ‘진주만’이라는 표현은 들어보고 역사적 전투가 벌어진 장소까진 이해했지만 그 이상은 무지했다는 것이다.
생생한 사례 취재를 통해 저자들은 전직 백악관 관료가 내린 결론을 인용해 “트럼프는 때때로 위험할 정도로 무식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을 ‘초보 최고사령관’에 빗대어 백악관의 혼선과 미숙함을 지적했다.
이 책에는 특히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 초반 굵직한 이슈를 쏟아낸 외교·안보 순간이 많이 담겨있다. 예를 들어 트럼프 대통령은 국무장관 후보자를 면접하는 자리에서 “내가 언제 푸틴을 만날 수 있을까”라거나 “취임식 전에 푸틴과 만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7월 독일 함부르크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했다. 이 만남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을 스스로 러시아 전문가로 선언했고 1990년대부터 러시아와 긴밀한 관계를 구축해온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을 느닷없이 경질했다. 저자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틸러슨 장관에게 ‘내가 두 시간 넘게 푸틴과 만났고 그게 내가 알아야 하는 전부’라고 말했다”고 소개했다.
이외에 트럼프 대통령이 법을 무시하는 발언도 소개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기업이 외국 관료들에게 뇌물을 제공하는 것을 금지한 해외부패방지법이 “미국 기업에 불공정하다”며 폐지를 주장했다. 그리고 지난해 4월 트윗으로 경질한 커스텐 닐슨 미국 국토안보부 장관을 겨냥해 “키가 작다, 신체적으로 위협적이지 않다”는 모욕적인 언사도 서슴지 않았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