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인권단체 “韓, 여성인권 진전… 北인권 외면” 실태분석

입력 2020-01-16 04:30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 웹사이트 캡처.

“여성의 권리는 진전이 있었지만, 북한 문제에서는 퇴보했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가 2019년 한국의 인권 실태를 분석한 결과는 이 한 줄로 요약된다. HRW는 14일(현지시간) 전 세계 100여개 국가를 대상으로 각국의 인권 실태를 분석한 연례 보고서 ‘월드리포트 2020’를 발표했다. 각국에서 2018년 말부터 2019년 11월 사이에 발생한 인권 이슈를 중심으로 실태를 조사했다.

HRW는 한국이 “대부분의 정치적·시민적·사회경제적 권리를 위한 적절한 보호장치를 갖춘 민주국가”라면서도 “여성, 난민, 이주민 등 취약집단에 대한 차별이 심각하고, 기업은 인권을 존중해야 할 법적 의무가 없다”고 지적했다. HRW는 특히 ‘여성인권’과 ‘북한인권’ 분야에서의 변화를 강조했다.

◇여성 차별 만연… 긍정적 변화도

HRW은 보고서 ‘여성의 권리’ 파트는 열악한 여성 인권에 대한 혹평으로 시작한다. HRW는 “한국에는 여성 차별이 만연해 있다”며 “미혼모에 대한 사회적 낙인과 차별 등 가족과 사회에서 여성의 역할에 대한 성적 정형화가 보편화되어 있으며, 이것이 흔히 묵인되거나 심지어는 정부에 의해 조장되기도 한다”고 일갈했다. 또 기업과 정치, 공공부문에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여성이 소수인 점, 심각한 남녀 임금 격차 등을 지적했다.

긍정적인 변화도 있다고 언급했다. HRW는 지난해 4월 11일 한국 대법원이 대부분의 낙태를 범죄로 취급하는 엄격한 ‘낙태금지법’에 위헌 결정을 내리고 국회에 2020년 말까지 낙태법을 개정하도록 명령한 것을 첫 번째 사례로 들었다.

또 “2019년에는 미투 운동이 유명 정치인와 연예인 등으로 확산되면서 지속적으로 힘을 얻었다”고도 분석했다. 서지현 검사를 성추행한 뒤 좌천성 인사를 지시한 혐의로 1·2심에서 징역 2년형을 선고받은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검사장), 비서를 성폭행한 혐의로 3년6개월형을 선고받은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등이 언급됐다. 하지만 안 전 검사장은 지난 9일 대법원의 무죄취지 파기환송으로 석방됐다.

여성단체를 중심으로 디지털성범죄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한국 정부가 고군분투하고 있다고도 전했다. 가수 정준영의 성범죄를 사례로 들었다. HRW는 다만 “2018년에 6800건의 디지털성범죄 피해가 경찰에 신고됐지만 3분의 1만 기소됐고 실형을 선고받은 경우는 전체 기소 건의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외교 미명 하에 北인권 외면”

HRW는 문재인정부가 북한 인권 문제에 소홀히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HRW는 “문재인정부는 북한과의 새로운 외교관계 구축이라는 미명 하에 북한의 인권 문제에 대한 정책을 아직까지 명확히 밝히지 않고 있다”며 “문 대통령은 2017년, 2018년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2019년 2월에 김 위원장을 다시 만났을 때도 인권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지난해 11월 한국 정부가 두 명의 북한 어민을 북한으로 강제 송환한 것도 지적을 받았다. HRW는 “한국 정부는 10월 북한으로 돌아갈 경우 살인 혐의로 고문과 처형을 받을 가능성이 높은 북한 어민 2명을 강제 송환시켜 우려를 가중시켰다”고 꼬집었다. 또 한국 정부가 2008년 이후 해마다 북한 인권을 규탄하는 결의안의 공동제안국으로 참여해왔지만 11월 14일에 개최된 유엔총회 제3위원회에서는 공동제안국 명단에서 이름을 뺐다고도 지적했다.

존 시프튼 HRW 아시아 어드보커시 디렉터는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 정권의 범죄를 눈감아주면 남북간 대화와 협력이 증진될 것이라는 가정을 바탕으로 한 잘못된 대북 정책을 포기해야 한다”며 “전세계가 요구하지 않는 한 북한 정권은 그 인권 상황을 절대 개선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한국 정부는 그러한 요구에 앞장서야 한다”고 덧붙였다.

◇기업은 좋고, 노동자는 힘들다

HRW는 이밖에 한국 정부와 대기업이 형사상 명예훼손죄, 국가보안법, 기타 법률의 제한적인 해석을 이용해 정부와 기업에 대한 감시활동을 제한해왔다고 지적했다. 또 “한국의 기업들은 (하청업체, 공급업체, 프랜차이즈 가맹점 등) 자사의 공급망을 포함하여 자사의 관할 하에 있는 조직에서 발생하는 인권 침해를 감시할 법적 의무가 없다”고도 꼬집었다.

시프튼 디렉터는 “인권변호사였던 문재인 대통령은 현재 여러 측면에서 인권 증진에 실패하고 있다”며 “2020년에는 문재인 대통령과 한국 정부가 그 방향을 바꿔 한국과 북한 그리고 전 세계의 인권을 우선과제로 삼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