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재 8차 사건’의 범인이라는 판결을 받고 20년간 옥살이를 했던 윤모(52)씨가 최근 재심 결정에 대해 “(당시 검찰과 경찰 수사관들로부터) 사과받기에는 늦었다”며 “이제는 법원의 판단을 믿는다”는 뜻을 밝혔다.
윤씨는 15일 충북 청주 서원구의 한 카페에서 기자들을 만나 “어제 오전 박준영 변호사로부터 재심이 결정됐다는 연락을 받았다”며 “재심이 받아들여질지 많이 걱정했지만 막상 됐다고 하니 기쁘기도 하고 담담하다”는 심경을 전했다.
앞서 윤씨는 1988년 9월 16일 경기도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 한 주택에서 초등생 박모(당시 13세)양을 성폭행하고 살해한 혐의로 이듬해 10월 열린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이후 2심과 3심에서 ‘경찰로부터 고문을 받아 허위자백했다’고 호소했지만 그대로 형이 확정됐다. 청주교도소에서 20년간 수감생활을 하다 2009년 가석방됐다.
그런데 지난해 10월 이춘재가 1980년대 화성 일대에서 발생한 연쇄살인사건 용의자로 경찰 조사를 받던 중 해당 사건 역시 자신의 소행이라고 주장했다. 이춘재는 사건 경위에 대해 “동네 구멍가게에서 술을 마시고 집으로 가다가 대문이 열려있는 집이 보였다”며 “방문 창호지에 난 구멍으로 안을 들여다봤는데 남자가 있었으면 그냥 가려고 했지만 여자가 자고 있어서 들어갔다”고 구체적으로 진술했다.
이 같은 내용의 경찰 발표 이후 윤씨는 박준영 재심 전문 변호사 등의 도움을 받아 재심을 준비해왔고 14일 해당 사건에 대한 재심을 개시한다는 수원지법의 결정이 내려졌다. 재판부는 “자신이 진범이라는 이춘재의 진술에 신빙성이 인정된다”며 “피고인 윤씨에 대해 무죄를 인정할 명백한 증거가 새로 발견된 때에 해당한다”고 재심 이유를 설명했다.
이날 윤씨는 당시 수사 관계자들에 대해 “경찰과 검찰 등 30여명이 입건돼 조사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국민 앞에서 사과한다면 받아줄 용의가 있었으나 지금은 늦었다고 본다. 이제는 법원의 판단을 받을 때”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또 진범을 주장하는 이춘재에 대해서는 “어린 학생부터 주부들, 노인까지 억울한 피해자가 많다”며 “법원 판단이 아직 남아 있지만 특별법을 만들어서라도 죗값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밝혔다.
본격적인 재판 준비에 돌입할 윤씨는 향후 계획에 대해 “재심이 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며 “앞으로 긴 싸움이 될 것 같아 평소처럼 생활하면서 준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씨는 “향후 재판이 어떻게 진행될지 모르겠다”면서도 “법원에서 잘 판단해줄 것이라 믿는다”고 덧붙였다.
법원은 다음 달 중 공판 준비기일을 열어 검찰과 변호인 쌍방의 입증계획을 청취하고 재심에 필요한 증거와 증인을 추릴 예정이다. 이르면 3월 재심 공판기일을 열어 사건을 재심리할 계획이다.
박실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