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 유럽 참여국인 영국·프랑스·독일이 이란이 합의사항을 위반했다고 비판하며 공식 분쟁조정절차에 착수했다. 합의를 유지하기 위해 애써왔던 유럽 3개국마저 탈퇴 가능성을 내비친 것으로 최악의 경우 JCPOA가 완전히 붕괴될 수도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우군인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한 발 더 나아가 JCPOA가 아닌 트럼프식 새 협약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란의 고립이 심화되는 모습이다.
영·프·독 외무장관들은 14일(현지시간) 공동성명을 통해 “이란의 행동을 고려할 때 이란이 JCPOA에서 약속한 사항들을 지키지 않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한다”며 “분쟁조정절차에 근거해 공동위원회를 소집하는 일 외에는 선택지가 없다”고 밝혔다. 이란 정부가 지난 5일 JCPOA에서 정한 핵프로그램 제한 조항을 더는 지키지 않겠다며 우라늄을 원하는 만큼 필요한 농도까지 농축하겠다고 선언한 데 따른 조치다. JCPOA 36조는 합의 서명국 가운데 한쪽이 합의를 준수하지 않는다고 문제를 제기하면 장관급 공동위원회를 열어 합의의 유효성을 논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절차로도 서명국 간의 이견이 좁혀지지 않을 경우 유엔 안정보장이사회 논의 결과에 따라 JCPOA 이후 완화됐던 유엔, 유럽연합(EU) 등의 대이란 제재가 복원될 수 있다.
세 나라 외무장관들은 다만 “이란에 최대 압박을 가하는 캠페인에는 참여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JCPOA의 실효성에 의문을 표하면서도 지금 바로 합의를 파기하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요청은 일축한 것이다. 미 행정부는 트럼프 취임 후 급작스럽게 JCPOA에서 탈퇴하고 지속적으로 대(對) 이란 제재 수위를 높여왔다.
하지만 세 나라의 공조가 얼마나 유지될 지 여부는 불투명하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BBC방송과의 신년인터뷰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입장에 힘을 실어주는 발언을 내놨기 때문이다. 존슨 총리는 “미국 정부는 2015년 체결한 JCPOA에 결함이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실제 이란이 핵무기를 갖는 것도 막아야 한다”며 기존 합의를 트럼프 안으로 대체할 것을 제안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은 스스로는 물론이고 다른 많은 이들로부터 훌륭한 해결사로 여겨지고 있다”며 “JCPOA는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협상안이다. 트럼프의 관점에선 결함이 아주 많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트럼프는 JCPOA 처분을 원한다. 처분하려면 대체제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BBC는 “존슨 총리가 JCPOA를 미국이 서명할 수 있는 형식으로 변경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간 오바마 전 대통령이 체결한 JCPOA가 이란의 미사일프로그램을 제어하는 데 실패했다고 주장해왔다. 기존 합의로는 이란이 이라크·시리아·예맨 등지의 친이란 민병대를 지원하는 일도 막을 수 없다는 게 트럼프의 입장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 하에 미 행정부는 지난 2018년 5월 일방적으로 JCPOA를 탈퇴하고 대이란 제재를 복원했다. 이에 이란은 지난해 5월부터 60일 간격으로 합의 이행 범위를 단계적으로 축소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