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배민(배달의 민족) 맛집’을 지난 주말 직접 방문했던 채모(41)씨는 기대 이하의 경험에 실망감을 감추지 못 했다. 식당에 손님이 많지도 않았는데 주문한 지 40분이 넘도록 음식이 나오지 않았다. 오래 기다린 끝에 나온 메뉴는 주문하지 않은 음식이었다.
조용히 음식이 잘못 나왔다고 말했지만 돌아온 건 사과가 아니라 “손님이 잘못 주문하지 않았느냐”는 타박이었다. 채씨는 “사장님이 ‘주문이 밀려서 너무 바쁘다. (잘못 나온 음식) 먹기 싫으면 나가라’고 해서 황당했다”며 “배달이 밀린 것 같긴 했는데 그렇다고 애써 식당을 찾아온 손님을 홀대하는 건 불쾌한 일”이라고 말했다.
배달 문화가 급속도로 발달하면서 채씨 사례처럼 현장에서도 각종 갈등이 생기고 있다. 15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한 달 동안 배달의민족 요기요 등 온라인 쇼핑을 통한 음식서비스 거래액이 1조242억원으로 처음으로 1조원을 넘어섰다. 전년 동기(2018년 11월 5114억원) 대비 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통계청의 ‘외식경영실태조사’ 보고서를 보면 2018년 기준 배달을 전문으로 하거나 병행하는 업체의 비중은 8.1%였다. 앞으로 이 비중은 점차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배달 서비스 늘면서 소비자와 공급자 간 갈등도 커져
채씨가 겪은 것처럼 배달을 병행하는 식당에서는 물량을 감당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잖다. 배달 주문이 밀려 정작 가게를 찾아 온 손님은 제대로 받지 못하면서 항의를 받는 일도 허다하다.
배달 전문을 표방하면서 사실상 반조리 된 음식을 데우기만 해서 배달하는 업체들에 대한 불만도 늘고 있다. 지역을 중심으로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상호명은 다르지만 대표는 한 사람인 식당 목록이 공유되기도 한다. 배달 서비스를 종종 이용한다는 최모(34)씨는 “믿을만한 음식점에서 정직하게 만든 요리를 주문하고 싶어서 가끔 집 주변 배달 음식점 목록의 대표가 누군지 찾아 본다”며 “배달 전문점이라고 늘 만족도가 낮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일단 거르는 편”이라고 했다.
소비자들의 불만도 납득할 만하나 음식점에서 일하는 이들의 항변도 일리가 있다. 15일 오후 12시쯤 서울 송파구의 한 패스트푸드점은 의외로 한산했다. 그렇다고 한가한 상황은 아니었다. 매장에서 식사 중인 이들은 적었지만 포장된 음식들이 주문대 한 켠에 잔뜩 늘어서 있었다. 검정색 방한복을 입은 이들이 끊임없이 들락거리며 포장 음식을 들고 나갔다. 계산대 너머에서는 직원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 매장에서 일하는 고모(23)씨는 “매장 주문은 무인계산대에서 받는데 가끔 ‘멀뚱하게 놀면서 계산도 안 받고 알바비는 날로 받느냐’고 화내는 손님도 있다”며 “사실 안에서는 무지 바쁘다. 특히 오늘처럼 날씨가 추운 날 점심 시간대는 주문이 밀려서 정신없다”고 했다.
식당을 운영하는 이들 중에는 배달 전문점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하기도 한다. 서울 은평구에서 분식집을 운영하다 지난해 배달 전문점으로 업종을 바꾼 신모(28)씨는 “배달에 집중하고 싶어서 배달 전문으로 바꿨고 반응이 좋아서 분점을 냈다. 내가 운영하면서 철저하게 관리하고 각각 전문 조리사들이 음식을 만들고 있다”며 “일부 커뮤니티에서 배달 전문점은 ‘믿고 거른다’고 하면 속상하다”고 말했다.
배달 늘면서 집밥 줄었다…식료품 구매비 5년 내 최저
음식 배달 문화가 확장하면서 집에서 직접 요리를 해 먹는 ‘집밥’ 수요는 줄고 있다. 요리연구가 백종원씨가 한 때 ‘집밥’ 열풍을 불고 오기도 했지만 1인 가구가 증가하고 배달 문화에 밀려 집밥은 ‘비경제적인 일’이 됐다. 채소, 과일, 고기 등 신선식품의 가격이 높은 것도 집밥 수요 하락을 거들었다.
한국은행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1~3분기 가계 소비에서 식료품 및 비주류 음료 구매비의 비중이 5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1~3분 가계의 명목 국내 소비지출액은 656조85억원이었고 식료품 및 비주류 음료에 쓴 비용은 74조8956억원으로 전체의 11.42%에 불과했다. 가계 소비에서 식료품에 쓴 비중은 1~3분기 기준으로 2014년(11.39%) 이후 최저수준이다. 반면 외식이나 배달 등이 포함된 음식점 및 숙박 서비스 지출액은 68조5715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88% 증가했다.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관계자는 “외식이나 배달 서비스를 이용하는 소비자들이 늘고 가정간편식(HMR)이 다양해지면서 마트에서 식료품을 살 때도 가공식품을 사는 경향이 강해졌다”고 분석했다.
관련 업계에서도 이와 관련해 고민이 깊다. 신선식품 가격이 비싸서 신선식품 소비가 줄어든 측면도 있는데 유통업계는 프리미엄 신선식품을 강화하는 추세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악순환이고 업계 입장에서는 고육지책이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유통업체, 특히 오프라인 유통업체의 강점은 신선식품인데 신선식품 소비가 줄고 있어서 단가가 높은 프리미엄 제품들을 강화하는 추세”라며 “식자재 값이 최근들어 높지 않은데도 찾는 소비자가 줄어드는 분위기라 농가에서는 고민이 더욱 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배달 오토바이·배달 노동자 갈등도 숙제
배달 오토바이를 둘러싼 갈등도 복잡하다. 배달 오토바이가 교통 질서를 해친다는 불만과 배달 노동자들의 처우 문제가 늘 부딪힌다. 최근 배달의민족에서 배민라이더와 배민커넥터의 배달 수행시간을 각각 60시간과 20시간으로 제한한 것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안전을 위해서는 시간 제한이 필요하다는 의견과 라이더나 커넥터의 노동시간 제한을 일방적으로 배민 측이 정할 수는 없는 문제라는 견해가 팽팽하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은 “배달노동자의 장시간 노동으로 인한 건강권 문제가 제기되고 있지만 이는 실제 업무를 수행하는 배달노동자와 대표조직인 노동조합의 의견을 반영해야 할 문제”라며 “살을 에는 추위와 찌는 더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오랜 시간 거리에서 일할 수밖에 없는 배달 노동자의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안전 문제는 노동 문제를 뛰어 넘어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배민커넥터를 운영하는 우아한청년들 측은 “지입 계약 라이더님들이 과도하게 장시간 배달을 수행할 경우 사고 위험이 증가하고 안전한 배달 수행이 어려운 점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배달 문화의 확장이 배달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는 이들의 일상에 불편을 끼친다는 의견도 있다. 서울 은평구에서 두 아이를 키우는 김은주씨(36)는 “배달 오토바이 때문에 아이들 키우기가 더 힘들어졌다. 밤늦게 다니는 오토바이 소음도 소음이지만 골목마다 오토바이가 수시로 지나다니니 너무 위험해졌다”고 말했다.
배달 오토바이의 교통안전 문제는 최근 들어 꾸준히 지적되고 있는 사안이다.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2015년에서 2018년까지 전체 교통사고 건수는 23만2000여건에서 21만7000여건으로 줄었지만 오토바이 사고는 1만2600여건에서 1만5000여건으로 증가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