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 왕자 ‘왕실 독립’ 불똥 튄 캐나다… 세금 투입 논란

입력 2020-01-15 16:37 수정 2020-01-15 17:58
캐나다 쥐스탱 트뤼도 총리(왼쪽)와 메건 마클 영국 왕자비. 서섹스 공작(해리 왕자) 부부 공식 인스타그램

영국에 파문을 일으킨 해리 왕자와 메건 마클 왕자비 부부의 ‘왕실 독립’ 선언의 불똥이 캐나다로도 튀었다. 해리 왕자 부부가 캐나다에 머물 것으로 알려지면서 경호비 등을 놓고 캐나다에서 논란이 일어난 것이다.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13일(현지시간) 해리 왕자의 향후 거취를 논의하기 위한 긴급회의를 개최한 뒤 성명을 내고 “해리 왕자 내외가 ‘전환기(period of transition)’를 가지며 영국과 캐나다를 오가며 생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영국 언론 ‘이브닝 스탠다드’는 이날 쥐스탱 트뤼도 총리가 해리 왕자 부부의 경호비용 일부를 캐나다가 지원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연간 100만 파운드(약 15억 원)에 달하는 왕자 부부의 경호비용 중 절반 정도인 50만 파운드(약 7억 5000만 원)를 캐나다 정부 재정으로 부담한다는 것이다.

캐나다는 헌법상 입헌군주국으로 영 연방 가운데 하나다. 캐나다 법에 따라 영국 왕족은 캐나다에 머무를 때는 캐나다 연방경찰의 경호를 지원받았다. 하지만 영국 왕실에서 물러나기로 한 해리 왕자 부부에 대해 캐나다 정부가 앞으로도 경호할 의무가 있느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트뤼도 총리가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이미 개인적으로 왕자 가족의 경호비용 지원을 약속하고 안전을 장담했다는 구체적 보도가 나오면서 캐나다 여론은 들끓고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는 “캐나다가 왜 영국인인 해리 왕자 부부를 위해 세금을 써야 하느냐”는 비판적인 내용의 반응이 잇따랐다. 캐나다납세자연합은 세금으로 해리 왕자 부부를 지원하는 것에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논란이 커지자 빌 모르노 캐나다 재무장관은 캐나다 CBC 방송에 “영연방 일원으로서 역할을 다하기 위해 항상 노력하고 있다. 다만 아직은 아무것도 결정된 일이 없다”고 진화에 나섰다. 이와 관련해 총리실은 관련 언급을 회피했다고 CBC 방송은 전했다.

뉴욕타임스(NYT)는 해리 왕자 부부가 이민과 세금 문제, 심지어 공식 직함에서조차 일반 캐나다 주민과 같은 대우를 받을 것이라고 정부 관계자와 다수 전문가를 인용해 14일 보도했다.

캐나다 이민국은 “캐나다 시민권법에는 영국 왕족에게 시민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조항이 없다”며 “해리 왕자 부부가 합법적인 영주권자가 되려면 정상적인 이민 절차를 밟아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해리 왕자 부부는 별도의 허가 없이 방문자 자격으로는 최대 6개월까지 캐나다에 거주할 수 있다고 NYT는 전했다. 이 경우에도 이들은 현지 취업은 할 수 없다. 왕자 부부는 복잡한 절차를 피하기 위해 방문자 자격으로 캐나다에 머물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내다봤다.

캐나다 거주 기간이 짧더라도 해리 왕자 부부가 납세의 의무를 무조건 면제받는 것도 아니다. 캐나다납세자연합은 “특정 주민이 소득세 납부 의무가 있는 ‘세법상 거주자’인지를 판단하는 명확한 규정은 없지만 1년 중 6개월 밑으로 캐나다에 머문 사람들도 세법상 거주자로 지정된 판례가 있다”고 설명했다.

해리 왕자 부부가 캐나다에서 ‘서식스 공작’과 ‘서식스 공작 부인’이라는 공식 칭호를 계속 사용하게 될지도 불투명하다. 1919년 캐나다 의회는 시민들이 영국 왕실로부터 공식 칭호를 받는 것을 금지했다. 의회는 향후 같은 내용의 결의안을 두 번이나 채택했다. 이에 따라 캐나다 출신인 미디어 재벌 콘래드 블랙이 지난 2001년 영국 왕실로부터 귀족 작위를 받았을 때 캐나다 시민권을 포기한 선례가 있다. 다만 영국 왕족이 캐나다로 이주한 사례는 없어서 해당 결의안이 이 경우에도 효력이 있는지는 논란이 일 전망이다.

한편 캐나다에선 이미 해리 왕자 부부가 오는 것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날 캐나다 유력 일간지 ‘글로브 앤드 메일’은 정부에 이들의 영구 이주를 불허하라고 촉구하는 사설을 냈다. 신문은 “당신들을 방문자로선 환영하지만, 캐나다는 당신이 왕족인 이상 계속 거주하도록 할 순 없다”며 “이 나라에 왕족이 거주하는 것은 캐나다와 영국 간, 캐나다와 영국 여왕 간 관계의 본질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