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우크라 여객기’ 후폭풍… 온건vs강경 권력 갈등 조짐

입력 2020-01-15 15:38 수정 2020-01-15 15:39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이 14일(현지시간) 테헤란에서 농부들과의 대화를 하고 있다. 로하니 대통령은 지난 8일 발생한 '우크라이나 여객기 격추 사고'에 대해 용서받지 못할 잘못이라며 책임있는 모든 사람들이 처벌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EPA연합뉴스

이란 ‘우크라이나 여객기 피격’ 사건의 여파가 이어지고 있다. 사고 초기 정부의 은폐 정황으로 반정부 시위가 며칠째 이어지는 가운데, 진상규명을 둘러싸고도 온건파와 강경파 간의 갈등까지 불거지는 모양새다. 온건파인 하산 로하니 대통령은 특별법정을 설치해 진상규명을 명확히 하자고 제안했지만, 군부세력은 여객기 피격 정황을 보여주는 동영상 촬영자를 체포하면서 엇박자를 내고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14일(현지시간) 로하니 대통령이 고위 법관 1인과 전문가 수십명으로 구성된 특별법정을 설치해 우크라이나 여객기 피격 사건을 심리하는 방안을 법원에 요청했다고 이란 국영매체 보도를 인용해 전했다. 로하니 대통령은 “이것은 일반적인 경우가 아니다. 전 세계가 이 재판을 지켜볼 것”이라며 “국민들에게 이 문제가 솔직하게 전달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라크전 당시 공군사령관 출신이기도 한 그는 “방공 문제에 대해 잘 알고 있다”며 “이 문제에 책임 있는 사람은 한 명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버튼을 누른 한 명이 아니라 (책임 있는) 다른 사람들도 있다”라고 덧붙였다.

로하니 대통령의 이 같은 발표는 사실상 군부를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앞서 이란 군 당국은 여객기 추락사고 이후 사흘간 기계 결함을 원인으로 지목했다. 하지만 사고 당시 영상 등 피격설을 뒷받침하는 증거들이 나오자 여객기를 미국 미사일로 오인해 격추했다고 시인했다. 그러면서도 시스템 문제가 아닌 ‘인간의 실수’라고 주장했는데, 로하니 대통령이 ‘한 명의 문제’가 아니라고 지적한 것이다.

알리 라베에이 대통령 대변인도 이날 사고 초기 기계 결함을 원인으로 지목한 것은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라 긴박하고 급변하는 상황에서 관련 정보를 제대로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하며 혁명수비대에게 책임을 돌렸다.

반면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를 따르는 군부 등은 강경한 모습을 보이면서 갈등하는 모습을 보였다. BBC방송, NYT 등은 현지언론을 인용해 이란 혁명수비대가 여객기 추락 당시 모습을 촬영한 것으로 알려진 이란인을 체포했다고 보도했다. 체포된 사람은 국가안보 관련 혐의로 기소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관련 영상을 처음 게재한 런던 주재 이란 기자는 자신의 정보원이 안전하며, 이란 당국이 엉뚱한 사람을 체포했다고 주장했다.

NYT는 사건 진상규명 과정에서 선출된 대통령과 혁명수비대가 상반된 신호를 내보내는 것은 이란 지도부 내 권력 투쟁 양상을 드러낸다고 분석했다. 또 일부 강경파 의원들 역시 로하니 행정부를 향해 사임을 요구하며 맹공을 퍼부었다고도 전했다.

한편 저스틴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글로벌TV와의 인터뷰에서 “만약 (미-이란의) 긴장이 없었다면 캐나다인들은 지금 그들의 가족과 함께 있을 것”이라고 말하며 미국에도 부분적으로 책임을 물었다고 영국 가디언은 전했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