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민 강사가 튼 ‘신체 훼손’ 영상의 출처…“BBC 과학 다큐”

입력 2020-01-13 16:28
기사와 무관한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세종시의 한 어학원에서 원어민 강사가 아이들에게 보여 준 ‘신체 훼손’ 동영상은 영국 공영방송 BBC의 다큐멘터리인 것으로 확인됐다. 원어민 강사 측은 “아이들이 요청해 유튜브 영상을 같이 본 것일 뿐, 학대 의도는 없었다”고 항변하는 중이다.

경찰과 해당 강사의 변호인 측에 따르면 캐나다 출신인 A씨는 지난 8일 오후 세종시의 모 어학원 강의실에서 수업 도중 한 유튜브 영상을 재생했다. 사람의 근육 조직 일부를 밖으로 빼내는 장면이 담긴 영상이었다.

당시 강의실에는 6~7세 미취학 아동 7명이 있던 것으로 전해졌다. 아이들은 영상 시청 후 충격을 호소했다고 한다.

경찰은 학부모들의 고소장이 접수되자 지난 10일 A씨를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로 긴급체포했다. “엽기적인 내용의 영상을 시청하게 하는 형태로 아이들을 학대했다”는 게 경찰 판단이다.

그러나 A씨 측은 ‘학대 의도’가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A씨 측에 따르면 그가 재생한 영상은 영국 BBC 과학 채널 ‘BBC Earth Lab’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의 일부다. ‘What Does Human Flesh Taste Like?’(사람 살맛은 어떨까)라는 제목의 이 영상은 3분43초 분량으로 만들어졌다. 연령 제한이 따로 없기 때문에 유튜브에 검색만 하면 성인 인증을 하지 않아도 누구나 시청할 수 있다.

영상 초반부는 의사 가운을 입은 사람이 자발적 참여자로 보이는 인물의 허벅지에서 샘플을 채취하는 장면으로 구성됐다. 또, 샘플을 채취해 배양하지만 결국 불법이라서 맛을 볼 수 없다는 내용이 담겼다. A씨 변호인은 “혐오스럽거나 엽기적인 의도로 제작된 영상이 아니라는 뜻”이라며 “‘인육’이라는 자극적인 표현 때문에 A씨를 향한 시선이 왜곡됐다”고 설명했다.

수업 도중 동영상을 틀어 준 경위에 대해서도 억울한 측면이 있다고 했다. 아이들이 ‘인육을 먹는 사람이 있느냐’고 질문했고, 구글로 검색하는 과정에서 일부 아이가 해당 영상을 재생해달라고 요청했다는 것이다.

A씨 변호인은 “A씨를 긴급 체포하고 구속영장까지 신청한 것은 ‘과잉 수사’ 여지가 있다”면서 “오죽하면 법원도 아니고 검찰에서 (구속) 영장을 안 받았겠느냐”고 지적했다.

경찰은 수사 과정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경찰 관계자는 “(다큐멘터리라 하더라도) 아이들이 영상 시청 후 충격을 받고 해당 학원에 가고 싶지 않다고 하는 게 학부모들의 설명”이라며 “고소장 접수 후 사안의 중대성과 도주 우려를 고려해 구속영장을 신청하게 된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다른 동영상 시청 여부 등도 확인하고 있다”면서 “A씨를 출국 금지하는 한편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를 이어갈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