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기념물 원앙 ‘총기 폐사’ 제주엔 뒤숭숭한 추측 난무

입력 2020-01-13 16:00 수정 2020-01-13 16:04
제주 서귀포시 강정천 상류지역에서 천연기념물 원앙새 10여마리가 폐사한 채 발견됐다. 이 중 한 마리에 대해 부검한 결과 산탄총알이 발견됐다. 한국조류보호협회 제주도지회 제공

제주에서 천연기념물 원앙이 총에 맞아 집단 폐사한 사건이 발생해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누가, 왜 총을 쏘았는 지 의문이 증폭되는 가운데 용의자를 두고 뒤숭숭한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서귀포시 강정천에서 죽은 원앙이 발견된 것은 지난 10일. 한국조류보호협회 제주도지회가 신고를 받고 다음날 현장을 찾았을 때 강정천 상류에선 죽은 원앙 12마리와 날개를 다친 원앙 1마리가 발견됐다. 부검 결과 원앙 몸에서는 산탄총알이 발견됐다. 누군가 원앙에 총을 쏜 것이다. 죽은 지 2~3일 가량 된 것으로 추정됐다.

현장에선 인근에 서식하는 여러 종류의 새 중 원앙 사체만 발견됐다. 총알이 원앙의 몸을 관통한 흔적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근거리에서 사격이 이뤄진 것으로 추측됐다.

원앙은 천연기념물(제327호)로 포획이 금지돼 있다. 원앙 사체가 발견된 강정천 일대는 수자원 보호구역이기 때문에 수렵활동을 할 수 없다. 제주도는 아프리카돼지열병 발병으로 지난해부터 수렵장을 운영하지 않고 있다. 때문에 원앙이 오발사고를 당했을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그렇다면 누군가 고의적으로 원앙 무리를 향해 총을 쏘았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 주민들은 이번 원앙 집단폐사가 제주 해군기지 진입도록 공사와 연관이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천연기념물인 원앙 집단 서식이 진입도로 공사에 방해가 되자 공사 관계자들이 서식 규모를 줄이기 위해 수렵에 나섰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13일 성명을 내고 범인 색출을 위한 엄정한 경찰 조사와 도로 공사 즉각 중단, 천연기념물 서식지 보호구역 지정을 요구했다.

일각에서는 불법 총기 소지자의 개인 일탈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총포 소지자는 관련 법에 따라 총포와 실탄을 관계기관에 보관하고 사용시 허가관청의 허가를 받아야 반출이 가능한데, 현재 제주지역은 수렵이 전면 금지돼 있어 정상적인 총기 보관해제를 통해 총기를 받은 이의 소행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이 경우 주민들의 불안감은 더욱 커진다. 총기 소지자가 가까이에 있지만 누군지 모르기 때문이다. 목적을 가지고 원앙만 공격한 것이 아니라면, 사람이나 다른 가축도 대상이 될 수 있다.

이처럼 제주에서 원앙을 상대로 총기를 발사하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발생하면서 곳곳에서 범행 동기에 대한 추측이 나돌고 있다.

한국조류협회 제주도지회 관계자는 “이번처럼 원앙만 단독으로 죽인 경우는 처음 있는 일”이라며 “정황상 고의적으로 사격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경찰은 일단 원앙 몸에서 나온 산탄총알로 미루어 용의자가 구형 산탄총을 불법 소지한 것으로 판단하고 현장 주변 CCTV를 분석하고 있다.

제주도는 13일 천연기념물 원앙의 집단폐사 발생 상황을 문화재청에 알리고, 경찰서에 수사를 의뢰했다.

제주도 등에 따르면 강정 일대에는 500여마리의 원앙새가 살고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제주=문정임 기자 moon1125@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