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해용 1심 무죄’에 이탄희 “김명수 대법원장 무책임의 결과”

입력 2020-01-13 15:42
이탄희 전 판사 페이스북 캡쳐

‘사법농단’ 의혹을 촉발시킨 이탄희 전 판사가 13일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의 1심 무죄 판결에 “대법원장의 무책임함이 빚어낸 결과”라고 말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법원 자체 조치를 취하지 않고 후속 처리를 검찰 수사에 맡김으로써 판결로 사법농단이 정당화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했다는 취지다.

이 전 판사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사법농단의 본질은 헌법위반이고 법관의 직업윤리위반이다. 형사사건이 이 사건의 본질이 아니다”라면서 “이번 판결이 사법개혁의 흐름에 장애가 된다면 그것은 대법원장의 무책임함, 20대 국회의 기능 실종이 빚어낸 결과”라고 말했다.

이 전 판사는 “사법농단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근혜 청와대, 외교부, 특정 로펌 등이 분업하며 재판에 개입한 사건으로 우리 헌정체제를 위협하고 재판받는 당사자들을 농락한 사건”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난 1년 내내 기회가 될 때마다 수없이 대법원장이 엄격한 법관징계 등 직업윤리 수호를 위해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촉구했고 법관탄핵 등 국회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고 말했다.


이 전 판사는 “선진국들이 모두 취하는 방식인데 왜 우리나라에서만 이렇게 어려운 것이냐”면서 사법농단 의혹 관련 김 대법원장의 태도를 비판했다.

그는 “특히 대법원장께서 외부위원 참여하는 자체조사위를 설치하지 않고 검찰 수사에만 기댄 일과 법관 징계에 관해 대규모 면죄부를 준 일이 다시 한번 통렬하게 다가온다”고 말했다.

이 전 판사는 “형사판결로 사법농단이 위헌성과 부정함이 절대로 정당화될 수 없다”면서 “정의와 부정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뀌어온 역사가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2017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 근무 때 상고법원 도입에 비판적인 국제인권법연구회의 학술대회를 견제하라는 지시에 항의하며 사직서를 냈다. 이후 법원행정처는 그를 원 소속인 수원지법으로 복귀시켰지만 발령이 취소된 배경이 석연치 않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태가 시작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8부(박남천 부장판사)는 13일 오전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기소된 유 전 수석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기소된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이 1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선고 공판을 마친 뒤 귀가하고 있다. 연합뉴스

유 전 수석은 대법원에서 근무하던 2016년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과 공모해 휘하 연구관에게 특정 재판의 경과 등을 파악하는 문건을 작성하도록 한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은 청와대의 요청을 받은 임 전 차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비선 진료’에 개입한 김영재·박채윤 부부의 소송 상황을 유 전 수석을 통해 알아본 뒤 이 내용을 청와대에 누설한 것으로 봤다.

유 전 수석은 상고심 소송 당사자들의 개인정보가 포함된 재판연구관 검토보고서를 퇴임 후 개인적으로 가져 나가고 대법원 재직 시절 취급했던 사건을 변호사 개업 후에 수임한 혐의도 받았다.

그러나 재판부는 그의 혐의를 모두 무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재판 경과를 누설한 혐의에는 “검찰이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피고인이 문건 작성을 지시해 임 전 차장에게 전달했다거나 임 전 차장이 청와대 등 외부에 이를 제공하는 등 공모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재판연구관 검토보고서를 가져 나간 혐의에는 “해당 보고서 파일이 공공기록물이라고 보기 어렵고 그 파일 내용 중에 개인정보가 일부 포함돼 있다고 해서 피고인에게 개인정보를 유출한다는 고의가 있었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권기석 기자 key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