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유일 女메달리스트 “떠날 것… 우리는 도구였다”

입력 2020-01-13 13:58 수정 2020-01-13 14:02
사진=키미아 알리자데 제누린 인스타그램 캡처.

이란 역사상 처음이자 유일한 여성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이란을 떠나겠다고 선언했다. 여성 운동선수를 향한 성차별, 정치적 이용 등을 이유로 들었다. 최근 이란에서는 정치·스포츠계에서의 차별이나 부당한 지시 등으로 선수들이 자국을 떠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고 있다.

영국 BBC방송 등은 12일(현지시간) 이란의 태권도 선수 키미아 알리자데 제누린이 전날 인스타그램에 이란을 떠나겠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알리자데는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여자 태권도 57㎏급 동메달리스트다. 1948년 이란이 올림픽에 출전한 이래 메달을 목에 건 유일한 여성 선수다.

알리자데는 자신을 “이란에서 억압받는 수백만의 여성 중 하나”라고 소개하며 “나는 그들(이란 당국)이 말한 대로 옷을 입었고 그들이 지시하는 대로 말했다. 그들이 명령하는 모든 문장을 나는 앵무새처럼 말했다”라고 그간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는 이란 당국이 자신을 선전도구로 이용했다고도 말했다. 알리자데는 “우리(여성 선수)는 단지 도구일 뿐이었다”라며 “그들은 내 메달을 의무적으로 써야하는 히잡에 집어넣었고 자신의 공으로 돌려 정치적으로 이용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그들은 내 메달을 이용하면서도 동시에 ‘다리를 그렇게 쭉쭉 뻗는 것은 여자의 덕목이 아니다’라고 모욕했다”라고 덧붙였다.

알리자데는 행선지는 밝히지 않았다. 그는 “유럽에서 나를 초청한 곳은 없고 귀가 솔깃한 제안을 받지도 않았다”면서도 “나는 위선과 거짓, 불평등, 아첨의 일부가 되고 싶지 않기에 올림픽 금메달보다 더 어려운 향수병의 고통을 받아들이기로 했다”라고 말했다.

앞서 이란 준관영 언론인 이스나통신은 지난 9일 알리자데가 이달 초 훈련 차 네덜란드로 떠나 귀국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이란 정치인 압돌카림 호세인자데는 “무능한 관리들이 이란의 인적 자본을 도망치게 했다”고 비난했다. 이스나통신은 알리자데가 2020년 도쿄 올림픽 출전을 희망하지만 이란 국기를 달고 싶지는 않다고 전했다.

미국 NPR방송은 최근 이란의 최고 스포츠 선수들이 자국을 대표하길 중단했다고 전했다. 세계 2위의 청소년 체스 챔피언인 알리레자 피라우자는 지난달 이란 당국이 이스라엘 선수와 체스시합을 못하게 제지하자 ‘더 이상 고국을 위해 뛰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란의 정치·스포츠 지도자들은 적대관계인 이스라엘을 반대하고 팔레스타인에 연대 표시를 하기 위해 자국의 선수들에게 이스라엘 선수와 시합에 나서지 말라고 강권해오고 있다.

이보다 앞서 지난해 10월 이란 유도 선수들은 국제유도연맹(IJF)으로부터 퇴출당했다. 이란 올림픽위원회가 세계유도선수권대회에 출전한 자국 선수 사이에드 몰라레이에게 이스라엘 선수와 결승전을 치르지 않도록 준결승에서 일부러 질 것을 강요한 것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몰라레이는 폭로 후 독일로 떠났다. 이란의 국제 축구 심판인 알리레자 파우하니도 지난해 호주로 떠났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