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본격적인 형사재판을 앞두고 보석 상태에서 레바논으로 달아난 카를로스 곤(65) 전 르노·닛산차 회장이 “일본 사법제도에 질렸다”며 공정한 재판이 가능한 제3국에서 재판을 받고 싶다는 의향을 밝혔다.
곤 전 회장은 12일 보도된 아사히신문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원래 일본에서 재판받고 싶었지만 공정한 재판이 보장되지 않았다”며 “변호권이 보장된 국가의 법원이라면 기꺼이 나가겠다”고 말했다.
곤 전 회장은 보수 축소 신고 혐의 등으로 2018년 11월 도쿄지검 특수부에 체포됐다. 이후 지난해 3월 보석으로 풀려났던 그는 특별배임 혐의로 다시 체포된 뒤 보석으로 석방된 상황에서 올 4월로 예정됐던 본격적인 재판을 앞두고 지난달 말 레바논으로 도주했다. 그는 보석 상태에서 레바논으로 도주한 것에 대해 “위법한 출국”이었다고 인정하면서도 자신의 명예가 떨어지는 것을 각오하고 단행했다고 털어놨다.
곤 전 회장은 일본에서 탈출하는 것을 두고 갈등이 있었지만 재판 종결까지 10년 정도나 걸리는데 자신의 나이로는 그걸 받아들일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신속한 재판을 원했지만 아무도 신경을 써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곤 전 회장은 또 일본인의 80%가 자신에게 죄가 있다고 생각한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언급하면서 “나 자신을 변호하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고 탈출 동기를 설명했다.
그는 지난 8일 레바논에서 세계 주요 언론매체 60여곳을 불러 기자회견을 열고 장기구금을 용인하는 일본의 사법제도를 비난했다. 이에 맞서 수사 주체인 도쿄지검과 일본 법무성은 곤 전 회장의 일방적인 주장이라며 도저히 받아들 수 없다고 반박했다.
이와 관련해 곤 전 회장은 아사히신문 인터뷰에서 “내가 체포된 후 14개월간 검찰 쪽만 발언했고 기자회견을 통해 2시간밖에 얘기하지 않은 내게 어떻게 일방적이라고 할 수 있느냐”고 비판했다. 그는 또 일본 형사재판에서 99% 넘게 유죄판결이 나오는 점을 들고 “일본 사법제도에 질렸다”며 자신이 일본을 탈출한 것에는 일본 검찰의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아내와의 면회를 여러 차례 요구했지만 성사되지 않았고 법정 통역에 대한 불만도 토로했지만 들어주지 않았다”며 일본 법원을 향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곤 전 회장은 최근 기자회견을 통해 닛산차에서 자신을 몰아내기 위해 닛산차 간부들이 ‘쿠데타’를 벌인 것이라고 규정하면서도 그 근거를 명확히 설명하지 않은 것에 대해선 “그들이 언론을 통해 나를 비난했고 나도 같은 일을 했을 뿐”이라고 일축했다. 아울러 일본 정부가 관계한 부분도 설명해야 해서 자세히 언급하고 싶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아사히신문은 일본과의 외교 관계가 악화하는 것을 우려하는 레바논 정부를 배려한 발언이라고 분석했다. 아사히는 곤 전 회장이 변호권이 보장된 국가의 법원이라면 기꺼이 나가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일본 법원에 제출된 자신의 사건 관련 서류를 인터넷 등을 통해 공개해 제3자 검증을 받겠다는 의향도 보였다고 전했다.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