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워하라” “거짓말쟁이에게 죽음을”
이란 대학생과 시민 등 천여명이 11일(현지시간) 저녁 수도인 테헤란 시내에서 혁명수비대 등 군부와 정부를 비판하는 항의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이날 오전 혁명수비대가 우크라이나 여객기 피격을 시인하자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자발적으로 모였다.
BBC는 아미르카비르 공과대학과 샤리프 공과대학 등 최소 두 곳에서 추모 집회가 열렸다가 점차 비판 시위로 분위기가 바뀌었다고 전했다. 이란 언론은 시위 참여자가 1000여명이라고 전했지만 미국 CNN방송은 수천명이라고 보도했다. 이날 시위는 테헤란뿐만 아니라 시라즈, 이스파한, 하메단, 우루미예 등 이란의 다른 도시에서도 개최됐다.
시위대는 “부끄러워 하라” “거짓말쟁이에게 죽음을” 등의 구호를 외치며 민항기 격추라는 초유의 사고를 일으킨 혁명수비대와 정부를 비판했다. “거짓말쟁이에게 죽음을”은 이란이 반미시위에서 주로 외치는 “미국에 죽음을”이라는 구호를 비튼 것이다. 소셜미디어에는 시위대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의 퇴진과 여객기 격추 책임자들을 처벌할 것을 요구하며 “독재자에게 죽음을” “하메네이는 살인자” 등의 구호를 외치는 영상들도 올라왔다.
이란 야권의 ‘녹색운동’을 이끄는 메흐디 카루비는 우크라이나 여객기 격추 사태의 책임을 물어 아야톨라 하메네이의 사퇴를 요구했다. 카루비는 인터넷에 게재된 성명을 통해 여객기 격추 사실을 보고받은 시점과 대중에 여객기 추락의 진짜 원인을 알리는 게 지연된 까닭을 캐물었다.
지난해 11월 이후 이란에서는 휘발유값 인상으로 촉발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잇따라 일어났다. 이란 국민들 사이에서 정부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커진 가운데 미군이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 솔레이마니를 살해한 뒤 반정부 시위는 사라지고 ‘반미’로 결집되는 양상을 보였다. 하지만 혁명수비대의 여객기 격추가 밝혀진 이후 다시 반정부 시위가 재점화 됐다. 이란에서 최고지도자의 사임 요구는 극히 이례적인 것으로 이번 사태의 파장이 심상치 않을 전망이다. 실제로 반정부 시위가 12일에도 열릴 예정이다.
한편 이란 주재 영국 대사가 아미르카비르 공과대학 앞에서 열린 집회에 참석했다가 체포됐다고 영국 언론이 이날 전했다. 이란 언론은 “롭 매케어 대사가 집회에 참석해 일부 과격하고 파괴적인 행동을 조직, 선동, 지시하려고 했다”고 전했다. 매케어 대사는 3시간 만에 석방되긴 했지만 오는 12일 소환돼 기소될 예정이다.
매케어 대사가 한때 체포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영국 정부는 ‘국제법 위반’이라며 거세게 항의했다. 영국 언론은 “이날 추모 집회가 반정부 시위로 번지자 매케어 대사와 대사관 직원 1명이 자리를 떴다”면서 “매케어 대사는 이발을 한 뒤 대사관으로 돌아오는 길에 붙잡혔다가 이란 외무부의 개입으로 풀려났다”고 전했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