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저녁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열린 2020년 검찰 신년동우회에 온 전직 검찰총장 등 원로들은 “요즘 걱정이 되긴 한다”는 말을 꺼냈다고 한다. 청와대 수사를 지휘하던 검사장들이 모두 지방 한직으로 발령난 데 따른 우려의 말이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이 자리에 없었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검사가 가는 자리마다 소중하지 않은 곳은 없다”고 말하며 테이블을 돌았다고 한다. 한 참석자는 “참모들을 애써 위로하는 말이 아니었겠느냐”고 했다. 윤 총장은 웃는 낯으로 후배들을 일일이 격려했고, 이후 동우회의 분위기는 부드러워졌다. 윤 총장은 행사 이후 선배들을 일일이 배웅한 뒤 다음 약속장소로 향했다.
참석자들의 관심은 역시 이번 검사장급 인사에서 대표적 좌천 사례로 거론된 한동훈 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장, 박찬호 대검 공공수사부장에게 집중됐다. 선배들이 말을 건네면 두 검사장은 비교적 밝은 표정으로 답했다 한다. 애초부터 “주어진 체계 내에서 일할 뿐”이라던 이들이었다.
한 부장은 “10여년 만에 부산에 가는구나” 하는 선배들의 말에 “가게 되어 좋습니다”라고 답했다. 한 부장은 2007년~2009년 부산지검에서 근무한 이력이 있다. 그는 당시 전군표 전 국세청장 뇌물수수 수사 특명을 받고 부산에 갔었다. 부산 한 중소건설업자의 재개발 비리가 세정 최고책임자의 구속으로 이어진 사건이었다.
서울에서 가장 먼 제주지검장으로 옮기는 박 부장도 실의에 빠진 모습은 아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 동우회가 열린 그 시각에도 청와대는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2부(부장검사 김태은)의 압수수색 영장 집행을 거부하고 있었다. 검찰 선배들은 “제주지검은 애를 써도 가지 못했었다”며 덕담을 건넸다. 박 부장은 “아무나 가기는 어렵습니다”라고 농담을 섞어 부드럽게 맞장구를 쳤다고 한다.
전현직 검찰 간부들은 이번 인사 이후 좌천된 검사장들에게서 항명 성격의 사표가 제출되지 않은 점을 높게 평가했다고 한다. 한 참석자는 “결과적으로는 ‘흔들기’ 인사를 한 이들이 패배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참석자는 “‘유경백별우신지(버드나무는 100차례 꺾여도 새 가지가 난다)’라는 말이 있다”며 “이 일로 검찰은 더욱 단단해졌다”고 말했다.
대검은 13일부터 새로운 참모진을 꾸린다. 심재철 서울남부지검 1차장이 한 부장의 자리를, 배용원 수원지검 1차장이 박 부장의 자리를 맡아 수사를 지휘한다. 윤 총장은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 하자”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구승은 박상은 기자 gugiz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