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해리 왕자와 메건 마클 왕자비의 거취를 논의할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영국 왕실이 해리 왕자 부부의 ‘독립 선언’을 사실상 수용하려는 모양새를 취하면서 최근 현지 언론이 예상한 해리 왕자의 캐나다 총독 임명설이 공식화 될지 주목된다.
11일(현지시간) 가디언 등 영국 언론에 따르면 엘리자베스 여왕이 13일 샌드링엄 별장에서 고위직 왕실 회의를 개최한다. 이날 회의에는 엘리자베스 여왕과 장남인 찰스 왕세자, 손자인 윌리엄 왕세손과 해리 왕자까지 총 4명이 참석한다.
영국 왕족 일가의 회동은 해리 왕자 부부가 지난 8일 깜짝 ‘독립 선언’ 성명을 발표한 이후 처음이다. 현재 캐나다에 머무는 마클 왕자비도 전화로 회의에 참여해 의견을 제시할 가능성도 있다. 잉글랜드 럭비협회(RFU) 명예총재인 해리 왕자가 오는 16일 2021 럭비리그월드컵 조추첨 행사에 참석해야 하는 상황에서 대중 앞에 나서기 전 왕실에서 문제를 조율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날 회의에서는 해리 왕자 부부의 미래를 놓고 그간 영국 왕실과 정부 및 캐나다 정부가 협의한 내용이 공유될 예정이다. 캐나다는 영국과 옛 영국의 식민지였던 국가들이 주축이 된 국제기구인 영연방 회원국 중 하나다. 지난 며칠간 마크 세드윌 내각장관이 영국 왕실과 정부 및 캐나다 정부 사이의 논의를 조율한 가운데, 해리 왕자가 캐나다의 차기 총독으로 임명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해리 왕자 부부가 앞서 발표한 성명에서 앞으로 영국과 북미를 오가며 생활하겠다고 밝힌 만큼 이들이 캐나다로 향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마클 왕자비는 미국 출신이지만 캐나다에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자신을 스타덤에 올려준 미국 드라마 ‘수트’를 촬영 당시 캐나다에 장기간 거주해 친구들이 많기 때문이다. 심지어 약혼 발표 등 공적인 자리에 캐나다 패션 브랜드를 착용하는 등 비공식 캐나다 패션 홍보대사로 불렸다. 2016년 대선을 앞두고는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면 캐나다로 이민가겠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해리 왕자 부부는 최근 크리스마스 휴가도 캐나다에서 보냈으며, 폭탄선언 이후 마클 왕자비는 다시 캐나다로 건너갔다. 생후 8개월인 아들 아치는 그동안 외할머니, 유모와 함께 계속 캐나다에서 머물렀던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에서는 비판이 끓이지 않는 반면 캐나다에서는 해리 왕자 부부의 이주를 두고 우호적인 목소리가 크다. 캐나다 내셔널포스트의 여론조사에서 캐나다인 61%는 해리 왕자가 캐나다 총독을 맡는 방안을 지지한다고 답변했다. 총독은 영국 식민지였다가 영국 연방에 남아있는 국가들에서 영국 여왕을 대신하는 직책이다. 캐나다 총독의 경우 내각 요청으로 영국 여왕이 임명하며 임기는 대체로 5년이다. 영국인이 독점하던 총독직은 1950년부터 줄곧 캐나다인이 맡아왔다. 현재 총독은 2017년 임명된 우주비행사 출신인 줄리 파예트다.
해리 왕자는 캐나다 총독 직책에 단 한 번도 관심을 드러낸 적이 없다. 하지만 과거 빅토리아 여왕이 자신의 3남인 아서 왕자를 10번째 캐나다 총독으로 임명한 전례가 있다. 1911~16년 총독을 지낸 아서 왕자는 캐나다 국민의 사랑을 받았으며, 총독 퇴임 이후에도 캐나다에 가족과 상당 기간 거주했다. 캐나다의 지지를 바탕으로 여왕이 해리 왕자를 임명한다면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예상이 나온다. 다만 경호와 그 비용 문제 등을 포함한 사안의 복잡성 때문에 최종 결정이 내려지기까지 시간이 다소 걸릴 것으로 보인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