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3월 새 학기부터 중·고교생들이 새로 바뀐 역사교과서로 공부한다. 많은 논란을 낳았던 박근혜정부의 국정 역사교과서 폐지 이후 교육과정과 집필 기준을 다듬어 새로 만든 교과서다. 새 검정교과서는 2015년 개정교육과정에 따른 것이지만 다른 교과서들이 2018년 도입된 것과 달리 국정교과서 파문으로 2년 늦었다. 새 역사 교과서는 중학교 때는 전근대사 중심, 고교 때는 근현대사를 중심으로 배운다.
국민일보는 고교 역사교과서 8종(금성출판사 동아출판 미래엔 비상교육 씨마스 지학사 천재교육 해냄에듀)에 실린 역대 대통령 사진과 그 설명을 12일 분석했다. 교과서 8종을 보면 김대중 전 대통령 사진은 17장이 쓰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10장, 문재인 대통령도 10장이다. 이들 사진은 대부분 ‘화해와 치유’의 긍정적인 이미지가 쓰였다.
김 전 대통령은 호치민 묘소 참배, 취임식, 노벨평화상, 남북정상회담이 주류다. 베트남전 상처를 극복하는 내용, 최초의 평화적 정권교체 설명도 곁들여졌다. 노 전 대통령은 제주 4·3사건 사과, 남북군사분계선을 도보로 넘는 사진이 주로 쓰였다.
문 대통령은 파격적인 대우를 받았다. 과거의 역사교과서들은 현직 대통령 관련 기술을 피해왔다. 현재 진행형인 사안이 많고 역사적 평가가 달라질 수 있어서다. 박근혜정부 국정교과서도 박근혜 전 대통령 내용은 당선 시점과 국정 지표 정도만 간략히 기술했다.
문 대통령 사진은 교과서 8종 중 7종에 실렸다. 씨마스 교과서는 ‘남북 화해와 동아시아 평화를 위한 노력’ 단원을 시작하며 김정은과 악수하는 전면사진을 게재하고 “문재인정부의 노력으로 큰 전환점을 맞이했다”고 기술했다. 비상교육은 문재인과 김정은이 나란히 판문점을 걷는 사진과 1976년 도끼만행 사건 사진을 거의 전면으로 다뤘다. 사진 설명은 “도끼만행 사건이 벌어질 당시 판문점에는 긴장감이 최고조에 이르렀지만 2018년에는 남북 정상과 많은 사람이 이곳에서 통일을 이야기했다”고 썼다.
동아출판도 해당 단원 첫 머리에 두 정상이 손을 잡고 높이 올리는 사진을 실었다. 이밖에도 평창동계올림픽 단일팀, 한반도기 공동입장, 남북합동평양공연 사진 등 문 대통령을 연상시키는 사진자료들이 비중있게 배치됐다.
이명박 전 대통령 사진은 5장이다.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 단체사진, 취임선서, 박 전 대통령 취임식 참석 등이다. G20 단체사진에서 이 전 대통령 얼굴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게 취급됐다. 박 전 대통령 사진은 교과서 8종 중 3장에 그쳤다. 취임식 사진 2장에다 역대 정부의 통일 노력을 다루는 단원에서 독일 드레스덴 연설 사진이 포함됐다. 다수 교과서들이 박근혜정부 기술에는 2016년말 촛불집회 사진을 썼다.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 사진과 전세계의 외신이 찬사를 보낸 내용도 포함됐다.
역사교과서에서 이 전 대통령, 박 전 대통령은 남북 관계의 걸림돌로 다뤄졌다. DJ와 노 전 대통령의 역사적인 정상회담 이후 훈풍을 타던 남북관계는 보수정부의 강경책으로 파국 직전까지 몰렸으나 다행히 문 전 대통령이 등장해 수습했다는 취지로 서술했다. 천안함 폭침은 아예 기술하지 않거나 사건이나 침몰로 썼다. 금강산 관광 중단 결정을 남북관계 악화의 상징적 사건으로 기술하면서도 박왕자씨 피살은 다루지 않았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하나회 척결, 금융실명제 등 업적에 비해 초라하게 다뤘다. 사진 7장 중 대부분이 DJ 취임식 참석 장면이다. 평화적 정권 교체를 이룬 후임자의 조연이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 사진들은 폭력적 이미지다. 박 전 대통령 사진(11장)은 한·미 정상회담, 훈장 수여, 선거포스터를 빼면 모두 5·16쿠데타 직후 군복에 선글라스를 쓴 모습이다.
전 전 대통령(14장), 노 전 대통령(16장)은 수의 차림으로 나란히 재판받는 사진이 7종에 등장한다. 전 전 대통령은 5공청문회에서 삿대질당하는 장면, 4·13 호헌 조치 발표 사진 등이 쓰였다. 노 전 대통령은 한·러 정상회담 외에 대부분 수의 차림이다.
이승만 전 대통령 사진은 남한 단독정부를 주장한 정읍발언, 취임 선서가 주류다. 이 전 대통령 생일 매스게임에 동원된 학생들 사진에 ‘수업도 안 하고 정부 행사에 동원된 학생들’이라고 썼고, 서울 남산공원 동상 사진에는 ‘1950년대 아시아 최고 높이를 자랑하는 동상, 이승만 생일은 임시공휴일, 찬양가 울려 퍼져’로 썼다.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