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정의용 靑실장 면박주다가 ‘트럼프 친서’ 사실 공개

입력 2020-01-12 12:25
정의용 靑실장, 백악관서 회의하다 트럼프 ‘깜짝 만남’
북한 “트럼프의 김정은 생일 축하 친서, 직접 받았다”
북미 위기 상황 속 트럼프, 김정은에 다시 대화 ‘손짓’
트럼프, 친서에 ‘도발 말고 대화 재개’ 요청 담았다는 분석

정의용(오른쪽)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8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자신의 카운터파트인 로버트 오브라이언(가운데)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타무라 시게루 일본 국가안전보장국장과 함께 한·미·일 3국 안보 고위급 협의를 가졌다. 이 회동 중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연락을 해와 정 실장과 트럼프 대통령 간의 ‘깜짝 만남’이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진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는 트위터를 통해 공개했다. 백악관 NSC 트위터 캡쳐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지난 8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깜짝 면담했다가 북한으로부터 큰 면박을 당했다.

그러나 북한은 정의용 실장을 비꼬면서 북·미 정상 간 연락 채널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친서를 보낸 사실을 공개했다. 북한은 트럼프 대통령이 대화를 간청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 의도적으로 친서를 받았다는 것을 밝힌 것으로 분석된다. 트럼프 대통령의 친서 내용에도 관심이 집중된다.

정 실장은 8일(한국 시간) 귀국해 인천공항에서 기자들과 만나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생일(1월 8일)을 기억하고 ‘덕담을 문재인 대통령께서 김 위원장에게 꼭 좀 전달해줬으면 좋겠다’ 당부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제(7일) 적절한 방법으로 북한에 메시지가 전달된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김계관 북한 외무성 고문은 11일 발표한 담화에서 “남조선 당국이 대긴급통지문으로 알려온 미국 대통령의 생일축하 인사라는 것을 우리는 미국 대통령의 친서로 직접 전달받은 상태”라고 밝히고 나선 것이다.

백악관은 정 실장의 트럼프 대통령 면담과 관련한 두 문장짜리 보도자료를 9일 냈다. 백악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8일 타무라 시게루 일본 국가안전보장국장과 정 실장을 잠시(briefly) 만났다고 밝혔다. 백악관은 이어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과 한국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가장 강력한 동맹들이라고 언급했으며, 미국이 한·일 양국과 공유하고 있는 지지와 깊은 우정에 대해 사의를 표했다고 설명했다.

정 실장은 트럼프 대통령을 깜짝 만나기 전 백악관에서 자신의 카운터파트인 로버트 오브라이언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시게루 국장과 한·미·일 3국 안보 고위급 협의를 진행했다. 백악관에 한·일 외교안보 사령탑들이 모여 있자 트럼프 대통령이 불쑥 연락을 해 만남이 이뤄졌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특히 깜짝 만남이 성사됐던 8일에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에 대해 군사적 대응 대신 경제제재 부과를 내용으로 하는 대국민 연설을 했다. 이란 문제로 바쁜 상황에서도 한·일 외교안보 사령탑과 만남을 가진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문제 해결에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증표로 여겨진다.

이 자리에서 이란에 대한 대응으로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한국군 파병을 둘러싼 논의가 이뤄졌는지 여부도 관심사다. 하지만 백악관이 ‘잠시’ 만났다고 밝힌 점에 비춰 구체적인 현안은 화제에 오르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북한의 공개적인 면박으로 정 실장의 트럼프 대통령 면담은 색이 조금 바랬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의 생일 축하를 언급한 것은 예사롭지 않은 대목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다시 한번 대화의 손짓을 보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북·미 정상 간의 ‘핫채널’이 북한의 도발 위협으로 고조된 긴장 국면을 해결할 수 있을지 여부에도 관심이 집중된다.

김계관 고문이 전달받았다고 공개한 미국 대통령의 친서에 어떤 내용이 담겨있을지도 변수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 대한 신뢰를 재확인하면서 대화 재개를 요청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나 핵실험 등 추가 도발을 하지 말라는 경고 메시지가 담겼을 가능성도 있다. 북·미 비핵화 협상과 관련된 구체적인 내용이 친서에 포함됐을 가능성은 낮다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이다.

로이터통신은 북·미 정상의 친분 관계가 외교적 해법을 찾아내기에는 아주 조금 유용할 뿐이라고 지적했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