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책]교황청의 돈과 권력의 역사

입력 2020-01-11 16:07 수정 2020-01-11 16:08
교황청의 돈과 권력의 역사
제랄드 포스너 지음, 명노을 옮김, 밀알서원, 862쪽, 3만5000원

1929년 2월 11일 바티칸의 라테란 궁에서 이탈리아의 파시스트 무솔리니와 교황 비오 11세는 ‘라테란 조약’을 체결했다. ‘라테란 협정’으로도 불리는 이 협정은 첫째, 정치조약, 둘째 교황과 국가 간의 관계조항들을 명시한 협약, 셋째 금융 협약, 이렇게 크게 3개 부문으로 구성되었다. 정치 조약은 바티칸을 중립국가로 인정하고 교황의 주권을 재정립하였다. 또한 교황을 성스럽고 침해 불가한 자로 선언되었고, 세속 왕권과 동일하면서 신적 권리를 부여받은 자로 인정하였다. 이 협정 덕분에 가톨릭교회는 황제를 눈밭에 세워두고 무릎 꿇렸던 중세시대 못지않은 강력한 권력을 갖게 되었다. 이후 이탈리아의 사제들은 파시스트들을 위해 기도하였고 무솔리니는 가톨릭 신자들이 대다수인 이탈리아에서 영웅으로 등장하게 된다.

라테란 조약의 금융협약을 통해 무솔리니는 7억5000만 리라의 현금과 5% 이자를 지불한 정부 채권 10억 리라로 바티칸에 보상했다. 이 돈은 2014년 달러 기준으로 13억 달러에 상당하는 거금이었다. 바티칸은 이 돈을 관리하기 위해 특별교황관리청을 세우고 유능하며 고위 가톨릭 성직자 친척들이 많은 은행가인 베르나르디노 노가라를 고용하였다. 노가라는 무솔리니에게 받은 돈 9천200만 달러를 무솔리니에게 다시 투자하여 10억 달러로 불려 놓았고 세계 각지에 투자하여 바티칸을 돈방석에 앉혀놓는다.

‘교황청의 돈과 권력의 역사’는 이탈리아 은행가 로베르토 칼비의 죽음으로부터 시작한다.
칼비는 파산한 암브리시아노 은행의 은행장이었고 이 은행의 대주주는 바티칸은행이었다. 책은 왜 칼비가 자살로 위장한 죽임을 당하였는지 파헤치며 바티칸 내부의 권력과 돈의 역사를 추적하여간다. 교황청과 파시스트 간의 정교협약, 그리고 바티칸의 자금이 홀로코스트를 향해 어떻게 흘러 들어가는지 우리가 알지 못했던 충격적인 역사의 여러 장면을 되살린다.
2차세계대전 직전 반유대주의가 전 유럽을 휩쓸던 시기 바티칸은 교황청 바로 앞에서 이탈리아의 유대인들이 나치에 의해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끌려갈 때 침묵으로 일관하였고 오히려 다음날 히틀러의 외상 폰 리벤트로프에게 감사의 서한을 보냈다고 책은 지적한다. 특히 교황청이 히틀러와 제국 정교협약을 맺은 1933년, 수천명의 독일 사제들이 그들의 교구 결혼과 세례 증명서를 넘겨줌으로써 나치가 이 서류들을 사용해 아리안족의 순수 혈통을 증명하였다는 대목은 충격적이다.
또 바티칸의 막대한 부와 이를 둘러싼 프리메이슨 조직 P2, 오푸스데이 같은 비밀조직들의 뒷이야기, 마피아의 자금세탁, 암살, 교황청 성직자들의 부패와 동성애 조직 ‘게이 로비’의 실상 등 세인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독자들을 책 속으로 빨아들인다..
이 책은 가톨릭교회의 심장부에서 벌어진 돈과 음모에 얽힌 어두운 역사에 빛을 밝히고 있다.
“권력은 부패하기 마련이며, 절대 권력은 절대로 부패한다. 위대한 인간은 거의 언제나 악인이다.” 책을 덮으면 달버그 액튼 경의 말이 울림으로 다가온다.

신귀중 기자 kj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