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이란 수도 테헤란 외곽에서 추락한 우크라이나 여객기가 이란의 지대공 미사일에 피격됐다는 미국 당국의 판단을 공식적으로 확인했다. 그러나 이란은 사고 여객기는 외부의 공격에 피격되지 않았다고 강하게 반박했다.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현지시각으로 10일 이란 수도 테헤란 외곽에서 추락한 우크라이나 여객기가 이란의 지대공 미사일에서 피격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조사 결과가 나오면 적절한 조처를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미 고위 당국자가 이란 미사일의 격추설을 실명으로 거론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날 대이란 추가 제재를 발표하기 위해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과 백악관에서 진행한 공동기자회견에서 이란 미사일이 여객기를 격추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전했다. “우리는 여객기가 이란 미사일에 의해 피격당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믿고 있다”고 밝힌 폼페이오 장관은 “우리는 최종 결론을 내기 전에 조사를 마치려고 한다. 조사 결과가 나오면 우리와 이 세계는 그에 대응하는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으로 나는 확신한다”고 말했다.
앞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전날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누군가 실수를 했을 수 있다”면서 “어떤 사람들은 기계적인 이유였다고 말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건 문제조차 아니라고 생각한다” 기계적 결함을 주장한 이란 측 설명을 일축했다. 그러면서 “나 나름대로 의심을 품고 있다”고 언급했다.
이란은 여전히 이번 사고가 미사일 격추 때문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알리 아베드자데 이란 민간항공청장은 현지시각으로 10일 기자회견을 열고 “공식 조사 결과가 나와야겠지만 사고기는 미사일에 격추되지 않았다. 이 사실 하나만은 확실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서방이 이란의 미사일로 여객기가 격추됐다고 주장하는 데 증거가 있다면 이란에도 공유해 달라”라며 “미국 정치인이 추락 관련 정보가 있다면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에 제출해 전 세계가 더 쉽게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또 수거한 블랙박스 정보는 이란이 보유한 특별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로 자체 추출할 계획이지만 그렇게 하지 못할 때는 외부의 도움을 청하겠다고 밝혔다. 블랙박스가 손상돼 저장된 자료를 추출하는 데는 1∼2개월이 걸릴 수 있다고 예측했다.
블랙박스 정보 추출 작업과 관련, 하산 레자에이파를 이란 조사위원장은 “우크라이나, 프랑스, 캐나다, 러시아가 돕겠다는 뜻을 전했다”라며 “이란 기술로 추출하지 못한다면 이들 나라 가운데 한 곳에 블랙박스를 보내겠다”라고 설명했다.
아베드자데 청장은 전날 이란 국영방송과 인터뷰에서도 “목격자의 증언과 파편으로 수집한 정보에 따르면 사고기는 이륙 3분 뒤 불이 붙었다”라며 “조종사가 8000피트(약 2400m) 고도에서 회항하려 했지만 화재 때문에 추락하고 말았다”라고 말했다.
이어 “사고기는 공중에서 폭발하지 않았다”라며 “미사일로 격추됐다는 의혹은 전적으로 배제해야 한다”라고 외부 피폭설을 부인했다. 그러면서 이란 미사일로 이 여객기가 격추됐다는 주장은 이란을 괴롭히려는 서방의 여론전이라고 지적했다.
세예드 압바스 무사비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10일 “우크라이나 여객기 추락 사고를 국제적 기준과 ICAO의 규범에 따라 조사하고 있다”라며 “우크라이나와 제조사 보잉사도 조사에 초청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번 사고로 자국민이 사망한 국가가 전문가를 이란으로 보낸다면 환영한다”라고 덧붙였다.
미국 국가교통안전위원회(NTSB)는 이번 사고 조사에 참여할 대표자를 임명했다고 발표했고 보잉사도 NTSB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이란의 피복설이 제기된 건 사고 직후 이른 시점에 ‘기계적' 결함이라고 섣불리 발표한 데다 추락 당시 정보를 담은 블랙박스를 미국 보잉사나 미국 연방항공청(FAA) 등에 넘기지 않겠다고 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란민간항공청은 사망자 가운데 147명이 이란인이며 나머지 32명이 외국인이라고 집계했다. 이는 우크라이나 정부가 밝힌 국적별 사망자(이란 82명, 캐나다 63명, 우크라이나 11명, 스웨덴 10명, 아프가니스탄 4명, 영국·독일 각 3명)와 다르다. 이런 차이는 사망자 중 캐나다 국적자 대부분이 이란 국적도 함께 보유한 이중 국적자였기 때문이다. 이란은 이란 국적을 우선해 이중국적을 인정하지 않는다.
천금주 기자 juju79@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