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업 세터 황택의 “마루프보다 선수형이 낫죠”

입력 2020-01-11 04:03 수정 2020-01-11 04:10
황택의가 10일 중국 장먼의 장먼 스포츠 센터 메인 코트에서 진행된 이란전 대비 마지막 훈련이 끝난 뒤 공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0 도쿄올림픽 아시아대륙 예선전을 치르고 있는 한국 남자배구 대표팀에선 백업 선수들의 역할이 크다. 주전 선수들의 체력이 떨어지거나 경기 분위기가 가라앉을 때 투입돼 쏠쏠한 활약으로 승리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백업 세터 황택의(KB손해보험)도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다. 9일 카타르전에서도 황택의는 2~4세트에 주전 세터 한선수에 쉴 틈을 부여했다. 단순히 대체만 한 건 아니다. 올 시즌 프로배구 V-리그 세트 4위(세트당 평균 9.96개)일 정도로 물 오른 기량으로 아크로바틱한 백토스를 선보이기도 했다.

10일 중국 장먼의 완다 렐름 호텔에서 만난 황택의는 “경기에 투입될 때면 팀 분위기도 끌어올리고 (한)선수형 머리 식히는 시간을 벌어주자는 마음가짐을 갖는다”며 “기회가 올 때마다 최대한 역할을 해주기 위해 뒤에서 준비를 많이 한다”고 밝혔다.

황택의는 원 포인트 서버로 경기에 나서기도 한다. 카타르전에서 서브 에이스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는 “제 서브의 장점은 실수가 거의 없다는 것”이라며 “제 서브 하나에 팀 분위기가 바뀔 수 있어 세터 역할로 들어갔을 때보다 더 신중하게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긴박했던 카타르전에선 깜짝 놀랄 일도 겪었다. 황택의는 3세트 도중 라이트 박철우 대신 서브를 넣기 위해 투입됐다. 그러다 한선수의 토스를 받아 배구인생 최초의 백어택까지 하게 됐다.

황택의는 “2단 볼도 때리는 (박)철우형과 교체했지만 당연히 볼이 안 올 줄 알았는데 (한)선수 형이 올렸다”며 “깜짝 놀라서 그 와중에 ‘라인은 안 밟고 넘겨야지’라는 생각만 했다”고 떠올렸다.

이어 “나중에 (한)선수 형에 물으니 (박)철우형과 바뀐 걸 못 봤다고 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배구를 하며 세터가 올린 공을 받은 건 처음”이라며 “국가대표팀에 오니 이런 경험도 한다”고 웃으며 말했다. 황택의가 넘긴 볼은 랠리 끝에 한국의 득점으로 이어졌다.

황택의가 10일 중국 장먼의 장먼 스포츠 센터 메인 코트에서 진행된 이란전 대비 마지막 훈련이 끝난 뒤 공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란과의 준결승에서도 황택의의 역할은 크다. 한선수와 함께 이란의 세계적인 세터 사에드 마루프(중국 베이징 BAIC 모터)와의 자존심 대결을 펼쳐야 한다.

그는 “(이란은) 마루프가 잘 올려준다기보다 공격수들이 처리를 잘한다. (한)선수형은 공격수들이 처리하기 쉽게 올려주는데다 센터 블로킹도 못 따라붙게 만들어 (실력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며 “저도 (한)선수형만큼은 못해도 형들 믿고 맘 편하게 분위기를 띄울 것”이라고 각오를 밝혔다.

강팀 이란을 잡기 위해선 강한 서브가 중요하다. 그는 “이란 리시브를 흔들지 못하면 경기가 힘들어진다”며 “최대한 실수 없이 강서브를 하겠다”고 덧붙였다.

이란마저 이기면 대망의 올림픽 진출권 획득도 가시권에 들어오게 된다. 황택의는 “지려고 나가는 경기가 아니다. 이란이 만만하게 보고 들어왔을 때 초반부터 쫄지 않고 저희 플레이를 잘 하면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중국 장먼=글·사진 이동환 기자 hu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