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밋섬’이 발목잡은 제주문화예술재단 ‘2년’

입력 2020-01-10 12:38 수정 2020-01-10 12:41
2018년 9월 제주문화예술재단 이사장에 임명된 고경대 동국대학교 언론정보대학원 겸임교수(왼쪽)가 원희룡 도지사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제주문화예술재단 고경대 이사장이 사임했다. 건강상의 이유를 들었고 그것이 사실로도 알려졌지만, 임기내내 ‘재밋섬’ 뒷수습에 매달려온 탓에 재단 안팎에서는 재밋섬 사태가 사실상 9대 이사장 체제의 발목을 잡았다는 아쉬움이 제기된다.

재단 등에 따르면 고경대 이사장이 최근 사직 의사를 표함에 따라 제주도가 오늘(10일)자로 면직처리했다. 제주문화예술재단은 오늘부터 직무대행 체제에 들어간다.

고경대 이사장은 2018년 9월 제9대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제주 출생으로 동국대와 성균관대에서 출판 및 신문방송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취득한 그는, 한국출판인회 사무국장과 동국대 언론정보대학원 겸임교수 등을 지냈다. 2014년부터는 제주에 머물며 부친인 사진작가 故 고영일씨가 찍었던 제주 풍경 사진과 같은 구도에서 촬영하는 방식으로 제주의 변화상을 나타내 관심을 모았다.

제9대 이사장 취임 당시 제주도는 그에 대해 “문화예술사업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다양한 이들과의 구체적인 소통전략을 제시해 이사장직 적임자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고 이사장은 취임 기자회견에서 ‘해방 이후 제주문화예술사 DB 구축’ 등 여러 구체적인 계획을 발표하며 직에 대한 열정을 드러냈다.

그러나 취임 후 그는 직전 이사장 체제에서 재단이 추진한 원도심 ‘재밋섬’ 건물 매입 건을 수습하는 데 사실상 매달리게 된다.

재밋섬 논란은 제주문화예술재단이 제주시 원도심에 있는 8층 규모의 영화관 건물을 110억원에 매입해 최소 60억원 이상을 들여 리모델링 한 뒤 재단 등 문예단체를 이전하고, 공공공연연습장을 개설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른바 ‘제주아트플랫폼 조성사업’이다.

그러나 이 사업은 문화예술진흥에 쓰도록 한 재단 육성기금(현 조성액 170억원) 중 100억원을 부동산 매입에 사용한다는 점과, 이처럼 이례적인 사업을 추진하면서 여론 수렴 과정이 충분치 않았고, 2018년 지방선거를 전후해 빠르게 추진되면서 감사, 검찰 고발 등으로 이어져 제주 사회에 파장을 일으켰다.

당시 제주도의회는 현장 방문, 중도금 지급 중단 요구, 제주도지사 질의 등을 통해 사업의 부당성을 연일 질타하며 원점 재검토를 촉구했다. 언론과 시민사회단체, 정의당 등 사회 곳곳에서 반대와 우려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현재 재단은 감사위원회 지적에 따라 타당성검토위원회를 구성해 사업 적격성 여부를 논의하고 있다. 2018년 매매 계약 체결후 재단이 1차 중도금 10억원을 건넨 상태에서 2차 중도금 납입이 전격 중단됐는데, 사업 자체에 가치가 있느냐는 지적이 있어 추진하기도, 안 하기도(위약금 20억) 애매한 상황에 처했다.

고 이사장은 10일 본지와 통화에서 “건강상에 문제가 생겨 중도에 그만두게 됐다. 도민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재밋섬 문제 자체 보다, 그것으로 인해 파생되는 여러 문제들로 인해 다른 일을 추진하는 데 한계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라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실제 고 이사장은 취임 일성으로 약속했던 ‘제주 문예사 DB구축’ 사업을 임기 2년 중 1년 4개월이 지나도록 시작하지 못 했다.

재단 관계자들도 비슷한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여러 관계자는 “지난 2년여간 이사장과 직원들이 재밋섬 문제에 매달리면서 새로운 사업을 추진할 물리적인 여력이 없었다”며 “재단이 이래저래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고 귀띔했다.

제주=문정임 기자 moon1125@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