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배후”vs“이란 희생자 최다”…우크라 여객기 추락 의혹

입력 2020-01-09 16:52 수정 2020-01-09 17:00
우크라이나국제항공(UIA) 소속 보잉 737-800 여객기가 8일(현지시간) 이란 테헤란 이맘호메이니국제공항에서 이륙한 직후 추락했다. AFP연합뉴스

이란 테헤란 이륙 직후 추락한 ‘우크라이나 여객기 사고’의 원인을 둘러싸고 의혹이 확산되고 있다. 사고가 이란이 미군 기지를 향해 미사일 수십기를 발사한 직후 발생하면서 테러 및 격추 의혹이 일었고, 이란 측은 대부분의 희생자가 이란인이라는 점을 들어 의혹을 일축했다. 하지만 이란이 여객기 제조국인 미국에 사고 여객기 블랙박스를 제공하지 않겠다고 밝히면서 관련 의혹은 물론, 양국 신경전도 이어지는 모양새다.

우크라이나국제항공(UIA) 소속 보잉 737-800 여객기는 8일(현지시간) 이란 테헤란 이맘호메이니국제공항에서 이륙한 직후 추락했다. 승객과 승무원 등 탑승자 176명이 전원 사망했다. 이란 도로교통부 대변인은 “이륙 직후 사고 여객기의 엔진 1개에서 불이 났다”며 “이후 기장이 기체 통제력을 상실해 여객기가 추락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서구 언론들을 중심으로 의혹이 제기됐다. 특히 여객기 사고가 이란이 가셈 솔레이마니 전 이란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에 대한 보복 조치로 이라크 내 미군 기지 2곳에 탄도미사일 공격을 가한 지 몇 시간 뒤 발생해 궁금증을 키웠다.

블룸버그통신은 미국 연방항공청(FAA) 사고조사팀을 이끌었던 제프리 구체티가 “외부에서 의도적으로 불을 붙이거나 폭발을 일으키지 않는다면 비행기가 그렇게 짧은 시간 안에 불에 붙지 않는다”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엔진 화재라는 이란 측 초기 설명에 대한 의혹이다. UIA도 조종사와 승무원의 경력, 여객기 상태 등을 고려하면 기체결함이나 조종사 실수에 따른 사고 가능성은 낮다고 주장했다.

이란 측은 의혹제기를 반박했다. 이란 메흐르통신은 이란군 총참모부 수석대변인 아볼파즐 셰카르치 준장이 의혹보도에 대해 “터무니없다”고 일축했다고 전했다. 그는 “여객기에 탄 대부분의 승객은 매우 귀중한 이란 젊은이였다”며 관련 보도가 미국의 심리전이라고 주장했다.

실제 우크라이나 외무부 발표에 따르면 이란인 희생자는 82명을 가장 많다. 캐나다인이 63명, 우크라이나인 11명(승무원 9명 포함), 스웨덴인 10명, 아프가니스탄인 4명, 독일 3명, 영국인 3명 등이었다.

화재 가능성이 있다는 전문가도 있다. 미 연방교통안전위원회(NTSB) 조사원으로 근무한 로저 콕스는 이론적으로 여객기 화물이 빠르게 움직이다 화재가 발생해 여객기가 추락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편 우크라이나 대사관은 당초 테러나 로켓·미사일 공격 가능성은 배제하고 있다며 기술적 결함에 따른 엔진 고장으로 추락했다고 성명을 냈다. 하지만 이후 사고 원인은 위원회 조사 결과에 따라 명확하게 드러날 것이라며 입장을 바꿨다. 미국과 이란 사이에서의 눈치 보기로 보인다.

이란은 미국에 여객기 블랙박스를 제공하지 않겠다고 밝혀 신경전을 펼쳤다. 민간항공기구(CAO) 위원장인 알리 아베드자데흐는 “우리는 이 블랙박스를 제조사와 미국에 넘기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우크라이나와는 긴밀히 공조키로 했다. 이란은 사고 현장에서 여객기 블랙박스 2개를 모두 회수해 분석 작업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미국은 추락 원인에 대한 어떠한 조사에도 완전한 협력을 요구한다”며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여객기가 추락한 장소는 이란이므로 국제법상 조사 주체도 이란이다. 하지만 통상 항공기 소속 국가, 제조업체 등 관련 기관이 조사에 참여토록 허용하는 게 관행이다. 사고 여객기를 제조한 보잉, 여객기 엔진 제조사 제너럴 일렉트릭(GE)은 모두 미국 기업이다.

양국의 갈등이 지속되면서 원인 규명도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뉴욕타임스(NYT)는 여객기 사고 원인을 확정하기 위해서는 국가 간 협력과 1년 이상의 어려운 조사 작업이 예상된다고 전했다. 특히 이번 사고에서 미국과 이란의 협력이 필수적인데, 현재 두 국가가 반목하고 있어 원인 규명이 훨씬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월스트리트저널(WSJ)도 원인 규명에 수개월이나 수년이 걸릴 수 있다며 양국 긴장 고조 상황에서 더 복잡해질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