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집여자의 미투’란 조롱은 왜 틀렸나 [인터뷰]

입력 2020-01-11 07:00 수정 2020-01-11 16:54
게티이미지뱅크

얼마 전 가수 김건모씨가 유흥업소에서 여성 종업원을 폭행 및 성폭행했다는 의혹이 제기됐습니다. 대중에게 진위 여부는 중요하지 않은 듯 보였습니다. ‘술집 여자가 무슨 미투’라는 조롱이 줄을 이었습니다. 관련 내용이 담긴 기사에 달린 댓글은 이렇습니다.

“직업여성은 이미 암묵적인 동의하에 일하는 것 아님?”
“업소에서 일을 하는 것 자체가 몸을 파는 거 아냐? 웃기네.”
“맞아도 싼 애들 아닌가ㅋㅋ”

사건이 알려진 후 가해 행위보다 피해 여성의 직업에 이목이 집중됐습니다. 그렇다면 인권은 피해자가 하는 일에 따라 적용 여부가 달라질 만큼 탄력적인 개념일까요. 전문가들은 이런 주장에 단호하게 고개를 젓습니다. 많은 전문가가 “피해자가 누구든 동의가 없었다면 성폭력”이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인권단체 ‘주홍빛연대 차차’의 활동가 열심, 사랑, 왹비를 7일 서울 영등포구에서 만나 성산업의 현실과 보호책을 물어봤습니다.

-돈을 받았으니 성관계를 암묵적으로 동의한 것 아니냐고 한다
▲사랑=“문제는 합의입니다. 상대방 동의 없는 신체·언어·정신적 행위는 모두 성폭력입니다. 중요한 건 협상인데요. 여성을 협상 대상이라고 여기지 않고 권리를 주지 않으니 문제가 발생합니다. 돈을 지불했다고 인간에 대한 권리 전체를 구매한 것은 아닙니다. 성폭력입니다.”

▲왹비=“성행위에는 양 당사자의 적극적 동의가 수반돼야 합니다. 성적 자기결정권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원하는 사람과 원하는 때에 원하는 성행동을 할 권리가 있습니다.”

▲열심=“좋게 말해 비적극적 동의나 문화적 동의라고 부릅니다. 업종에 따라, 업소에 따라, 개인에 따라 허용된 수위나 정도가 있습니다. 손님은 이 룰을 잘 압니다. 지불하는 금액과 장소와 상황으로 충분히 인지한 상태입니다. 다만 무시합니다. 주체적으로 합의하지 않는 모든 행위는 성폭력입니다.”

-언어·신체 폭력도 많이 일어나는데 왜 이런 상황에 쉽게 노출되나
열심=“구매자는 자신이 여성보다 더 큰 권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돈을 주고 상대의 몸을 샀다고 생각하고 단순히 상품으로 대합니다. 사회 인식도 같습니다. 존중받아야 할 인간으로 대우하지 않습니다.”

▲왹비=“문화적으로 이런 공간은 성적인 모든 행위를 허락받았다고 여겨집니다. 심리경계를 완전히 허무는 겁니다. ‘돈을 줬으니 이 시간엔 내 것’이라고 생각하고 여성을 자신보다 낮은 위치로 여깁니다. 때문에 여러 종류의 폭력이 쉽게 행해집니다. 피해를 입어도 쉽게 발설하지 못할 거라는 확신도 범죄를 유발합니다.”

사랑=“공간적 특징이 큽니다. 주로 밀폐된 공간에서 일하기 때문이죠. 아무도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고 사전에 약속되지 않은 행위를 강제로 합니다. 불법촬영, 언어폭력과 인격모독도 빈번합니다. 영업주가 관리를 한다면 상황은 달라지겠죠. 하지만 보호할 의무가 있는 영업주도 여러 폭력을 행사합니다.”

-손님과 직원 사이 어떤 규칙이 있나
왹비=“아무하고나 아무 행동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협상되지 않은 스킨십을, 협상하지 않고 강요할 수 없습니다. 동의하지 않은 행위를 강제하면서, 상대가 거부하면 ‘돈을 더 주겠다’고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이 또한 성폭력입니다. 동의 여부가 중요합니다.”

사랑=“자발적으로 동의한 범위까지만 허용됩니다. 약속 받은 환경에서 약속 받은 보호조치를 이행하는 것이 규칙입니다.”

-피해를 입고도 왜 문제제기를 못하나
열심=“사회적 낙인 속에서 누군가가 자신의 편을 들어줄 가능성은 낮다는 판단을 합니다. 이들의 목소리를 사회는 듣지 않습니다. 문제제기를 하더라도 변호사 구하는데 애를 먹는 경우도 봤습니다. 어디서 피해를 입었는지를 여전히 중요하게 여기는 겁니다. 그저 성폭력 피해자일 뿐인데 사건 자체로 바라보지 않는 겁니다.”

왹비=“이들의 호소는 쉽게 무시 당합니다. 어차피 ‘그런 일’ 하면서 무슨 강간이냐는 논리입니다. 이 과정에 심각한 폭력이 있었대도 차치됩니다. 대중은 이들에게 성폭력을 주장할 권리가 없다고 여깁니다. 권리 영역에서 배제한 겁니다. 이런 인식이 팽배하다보니 피해를 입어도 입을 열 수 없게 됩니다.”

사랑=“수사기관에 대한 불신도 한 몫 합니다. 단속에 참여하는 여성 경찰의 비율이 상당히 적고, 출동했더라도 젠더 감수성이 현저히 낮아 피해 사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합니다. 여성 경찰을 불러 달라고 요청해도 응하지 않는 경우도 봤습니다. 폭력을 당한 여성이 나체로 발견되는 경우도 있지만 보호하지 않았습니다.”

-업소에서 벌어진 성폭력 관련 보도에 어떤 문제가 있나
열심=“앞서 박유천씨가 업소 여성을 성폭행했다는 사실이 알려졌을 때 ‘강간은 성립할 수 없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술집에서 일한다고 왜 인권이 없나요. 이런 보도는 선정적인 내용을 부각하고 사건 과정을 자세히 묘사합니다. 현장을 포르노처럼 재현해 관심을 끌고 관음증과 호기심을 충족해줍니다. 피해 여성을 전혀 배려하지 않죠. 여성이 느끼는 두려움을 증폭시키고 행동 반경을 제한할 수도 있습니다. 대상을 조롱하면서 사건의 심각성을 낮추기도 합니다.”

왹비=“유튜브를 통해 김건모씨에게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여성의 증언이 전해졌습니다. 공간 특성상 진위 여부와 관계없이 모든 주장이 가감 없이 송출됐습니다. 문제는 언론입니다. 지나치게 구체적이고 자극적인 가해방법을 마구잡이로 받아서 썼습니다. 피해자를 성적 행위 대상처럼 표현해 성애화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보도는 오히려 성폭행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유흥업소 직원은 강간해도 된다’는 일부 네티즌 의견을 여과 없이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범죄적 시선을 꼬집지 않고 받아적는 보도는 지양해야 합니다.”

사랑=“인권보도준칙만 준수해도 좋겠습니다. 언론 스스로 ‘받아쓰기가 윤리적인가’를 물어봤으면 좋겠습니다. 피해 여성의 서사를 가져오는 것은 중요하지만 맥락을 파악해야 합니다. 동정 포르노는 분명 존재합니다. 언론은 동정 받을 만한 피해 서사만을 강조해 피해자를 타자화하고 사건을 희화화 하고 있습니다.”

-성매매여성지원센터 상황은
▲열심=“전문적이지 않은 곳이 많습니다. 인권 감수성이 부족해 센터 직원으로부터 상처를 입는 경우도 있습니다. 폭력을 입은 당사자에게 2차 가해를 하는 겁니다. 어떤 이는 ‘어차피 치료해줘도 또 일하러 갈 것 아니냐’는 말을 듣고 센터에 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물론 물심양면 도와주는 곳도 많습니다.”

사랑=“전문지식이나 상대에 대한 공감 없이 막무가내식 상담이 진행되는 곳이 적지 않습니다. 상담 받은 이들 중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는 이들도 있고, 심지어 우울감이 심해졌다는 이들도 있습니다.”

-성산업을 없애면 피해도 없어지는 것 아닌가
열심=“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지만 당장 오늘 발생할 피해를 막을 수는 없습니다. 단순 근절은 뿌리를 뽑는 것이 아니라 줄기만을 제거하는 행위입니다. 이 문화에 만연한 문제는 자본주의, 가부장제, 섹슈얼리티 혐오입니다. 여성혐오적인 여러 문제가 얽히고설켜 있어 함께 건드리며 해결해야 합니다. 결과만을 제재하는 행위는 ‘눈 가리고 아웅’ 아닐까요. 뿌리 깊은 여성혐오가 남아있는 한 성매매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왹비=“여성이 열악한 환경에서 착취당하기 때문에 성매매를 없애자는 것이 지금은 빠르고 간결한 해결책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본질적인 원인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성을 열악한 위치에 배치시키는 진짜 이유를 찾지 못한다면 이런 환경은 언제든 다시 생길 겁니다. 무작정 근절하는 방식으로 접근해선 안 됩니다. 인권 침해가 더 크게 발생할 여지가 있습니다.”

-당장 근절할 수 없다면 일단 어떤 것부터 해결해야 하나
▲사랑=“수사 기관이 적극적으로 나서주기를 바랍니다. 젠더 문제를 왜곡해 해석하거나 편견과 낙인 속에서 피해자를 대한다면 범죄를 제대로 바라보기 어려울 것입니다. 균형잡힌, 포괄적인 젠더 감수성을 경찰부터 함양해야 합니다.”

왹비=“성산업 시장의 유형이 다양해진 만큼 권력구조 또한 다양해졌습니다. 여성이 착취 당하지 않고 더 안전히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자는 시각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이 문화를 유지시키는 요인을 제대로 알고 종사자의 위치를 파악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과거 형법 제25조는 ‘정조에 관한 죄’였습니다. 성폭력의 보호법익을 여성의 정조로 규정하고 보호해야 하는 여성과 그러지 않아도 될 여성으로 이분화 한 겁니다. 법으로 ‘피해자다움’을 명시해놨다는 의미죠. 이 법은 1995년 ‘강간과 추행의 죄’로 개정됐습니다. 성폭력 보호법익을 성적자기결정권으로 판단하기로 했고요. 세상은 바뀌었나요. 이날 만난 활동가들은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여성들도 수치심을 느끼고 고통을 괴로워하는 지극히 평범한 인간”이라고 말했습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