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왕도 몰랐다… 英 해리 왕자부부 ‘왕실독립’ 깜짝 선언

입력 2020-01-09 11:33

영국 해리 왕자와 메건 마클 왕자비 부부가 영국 왕실의 고위 구성원에서 벗어나 재정적으로 독립하겠다고 선언했다. 성명 발표 전까지 여왕 등 다른 왕족들도 이 사실을 모를 만큼 깜짝 선언인 것으로 알려졌다. 해리 왕자 부부는 형 윌리엄 왕세손 부부와의 갈등을 빚어온 한편, 사생활을 파헤친 언론에도 불만을 표시해왔다.

영국 BBC방송, 가디언 등은 8일(현지시간) 해리 왕자 부부가 버킹엄궁을 통한 성명에서 “우리는 시니어(senior) 왕실 가족의 일원에서 한 걸을 물러나 재정적으로 독립하려 한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다만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영연방, 현재 맡은 직과 관련한 의무는 계속 이어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시니어 왕실가족은 통상 왕실 내에서도 엘리자베스 2세 여왕 부부와 찰스 왕세자를 포함한 여왕의 직계 자녀, 찰스 왕세자의 직계 자녀인 윌리엄 왕세손과 해리 왕자 부부를 지칭한다. 해리 왕자는 2018년 5월 마클 왕자비와 결혼한 뒤 조모인 엘리자베스 여왕으로부터 ‘서섹스 공작, 덤바튼 백작 및 킬킬 남작’이란 칭호를 받았고, 할리우드 출신 마클은 해리 왕자와의 결혼 이후 시민에서 왕족으로 신분으로 바뀌며 ‘서섹스 공작부인’이라는 칭호를 하사받았다.

해리 왕자 부부는 “여러분들의 격려 하에 우리는 수년간 이 같은 조정을 준비해왔다”고 설명했다.

다른 왕족들은 성명 발표 전까지 이 사실을 몰랐던 것으로 전해질 만큼 깜짝 발표였다. BBC는 성명이 나오기 전까지 여왕과 윌리엄 왕자를 포함한 다른 왕족들과의 상의가 없었고, 버킹엄궁은 이에 실망했다고 전했다. BBC는 궁 관계자가 “해리 왕자 부부와 다른 왕실 가족 간의 명백한 불화(rift)”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스카이 뉴스도 이번 발표가 그동안 왕실 가족 일원으로서 해리 왕자 부부가 받아왔던 압박감을 보여주며, 그들이 다른 형식의 삶을 원하고 있는 것을 나타낸다고 해석했다.

해리 왕자 부부는 향후 영국과 북미를 오가며 시간을 균형있게 보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부부는 “지리적 균형은 우리 아들이 태어난 왕실의 전통에 감사함을 가질 수 있도록 양육하게 해주는 한편, 새로운 자선단체 출범을 포함한 다음 단계에 집중할 공간을 제공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해리 왕자는 할리우드 여배우 출신 메건 마클 왕자비와 결혼한 이후 형 윌리엄 왕세손과 불화설에 시달려왔다. 해리 왕자는 지난해 10월 ITV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 출연해 “전부 과장이거나 허위인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며 불화설을 사실상 인정했다.

해리 왕자 부부는 언론과도 갈등을 이어왔다. 해리 왕자는 어머니인 고(故) 다이애나빈(嬪)이 파파라치의 추적을 피하다 목숨을 잃은 경험이 있어 언론에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해리 왕자 부부는 메건 마클 왕자비가 생부 토머스 마클에게 보낸 편지 원문과 파파라치가 찍은 사진 등을 실은 언론을 고소하기도 했다. 해리 왕자는 “나는 어머니를 잃었고 이제 내 아내가 동일한 강력한 힘에 희생양이 되는 것을 본다”며 “언론 매체가 거짓되고 악랄한 내용을 끈질기게 유포할 때 인적 피해가 발생한다. 물러나서 방치하는 것은 우리의 모든 신념에 배치된다”고 소송 이유를 설명했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