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 참석자, “미국 장군이 죽었다면, 미국 가만히 있었겠나”
“경제 제재도 전쟁의 한 형태. 경제 보복도 이란 자극할 수 있어”
예측불가능한 트럼프, 미국을 전쟁으로 몰지 않을까 크게 걱정
자동소총 무장한 백악관 경호요원과 반전대 시위대, 미국의 단면
8일(현지시간) 오후 3시 미국 워싱턴의 백악관 앞. “이란과 전쟁을 하지 마라(No War on Iran)”, “이란에 폭탄을 발사하지 마라”, “이라크 주둔 미군을 철수하라” 등의 외침이 터져 나왔다.
이날 시위는 반전 시민단체인 ‘코드 핑크(Code Pink)’와 ‘전쟁 중단과 인종주의 종식 행동(Act Now to Stop War and End Racism)’ 등이 공동으로 주도했다. 50여명이 나와 피켓을 들고 반전 구호를 외쳤다.
주최 측 관계자는 “어제(7일) 밤 이란이 이라크에 있는 미군 기지 두 곳에 대해 폭격을 가한 뒤 이번 시위가 급히 조직됐다”고 설명했다. 백악관 주변에는 전날 있었던 이란의 공격으로 경계가 강화돼 자동소총으로 무장한 요원들이 근무를 서고 있었다. 중무장 요원들과 반전 시위대의 모습은 미국의 현 단면이었다. 이날 시위는 오후 3시부터 약 1시간 반 정도 진행됐다.
코드 핑크의 라틴 아메리카 담당자인 테리 매티슨은 이란과 긴장이 고조된 책임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돌렸다. 시위 현장에서 만난 매티슨은 “미국 장군이 이란의 군사지도자 가셈 솔레이마니처럼 죽었다면, 미국이 가만히 있었겠나. 미국은 아마도 상상할 수 없는 반격을 감행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매티슨은 이어 “트럼프 대통령이 솔레이마니 제거를 결정하면서 이번 위기가 촉발됐다”면서 “반격을 가한 이란보다 트럼프 대통령의 책임이 더 크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선제공격이 이란의 폭격을 불러왔다”고 비판했다.
메티슨은 특히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안보 정책을 전혀 신뢰할 수 없다”면서 “나는 여전히 이란과의 전면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고 우려했다. 매티슨은 또 “올해 대선을 앞둔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과 북한 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한다”고 깎아내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오전 대국민 연설을 통해 이란에 대한 군사적 응징 대신 경제 제재를 택했다. 하지만 여기에 대한 평가도 박했다. 시위에 참여한 조시 셋즐러는 “경제 제재도 외교가 아닌 전쟁의 한 형태”라면서 “군사 보복만큼이나 경제 보복도 이란을 자극시킬 수 있다”고 비판했다.
셋즐러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과의 핵 합의를 파기한 것이 가장 큰 잘못이고 솔레이마니를 죽인 것은 두 번째 잘못”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은 평화적인 방법으로 이란과 다시 핵 합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셋즐러는 “하지만 나는 안타깝게도 트럼프 대통령이 그런 선택을 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켄 쿠츠타는 고등학교 영어 선생님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쿠츠타는 수업을 마치고 시위에 참여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반전 시위에 나오기 앞서 트럼프 대통령이 대국민 연설에서 이란과의 전면전을 선언할까봐 조마조마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연설로 전쟁 위기는 조금 넘긴 것 같다”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의 예측불가능한 성격을 고려할 때 이란과의 충돌이 다시 전면전 위기로 치달을 수 있다는 불안감을 떨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반전 시위에 나온 미국 시민들의 가장 큰 걱정은 트럼프 대통령이었다. 이들은 감정조절이 안 되는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을 전쟁으로 모는 결정을 하지 않을까 실제로 크게 걱정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외교적 위기를 정치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컸다.
이번 시위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가면을 쓴 사람이 눈길을 끌었다. 트럼프 대통령을 가장한 그의 손에는 “나는 내가 원하면 전쟁을 시작할 수 있다”, “나는 당신의 가장 최악의 비상상황”이라는 문구가 쓰인 팻말이 들려있었다.
워싱턴=글·사진 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